[미얀마 개혁개방 현장을 가다] 맨해튼보다 비싼 양곤 임대료… 외국 中企, 못 버티고 방빼
입력 2014-03-29 02:11
개혁개방 3년째로 접어든 2014년 3월의 미얀마 양곤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걸맞았다. 49년간의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2011년 4월 민주정부가 들어선 미얀마는 서방의 압력에 밀려 강력한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수출입 자유화, 경제특구법 등을 통한 외국인 투자유치는 미얀마를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순식간에 변모시킨 핵심 조치였다.
지난 3년간 수십조원의 외국자본이 유입되면서 도시 풍경이 바뀌었다. 외자 집결지인 최대 상업도시 양곤에는 대형호텔 신축이 한창이었고 거리는 ‘도요타’ 자동차로 넘쳐났다. 사람들 손엔 웬만한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미국 맨해튼보다 비싼 임대료
양곤 중심가에 위치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사무실은 월 임대료가 2000만원 정도다. 3년 전에 비해 3배 넘게 올랐다. 임대료 높기로 유명한 미국 뉴욕 맨해튼보다 비싸다. 그렇다고 좋은 빌딩에 입주한 것도 아니다. 23년 된 건물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월 100만원을 더 내야 한다.
풍부한 자원과 한반도 3배에 이르는 넓은 국토, 인구 6000만명의 시장을 가진 동남아의 마지막 ‘황금시장’이 열리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물밀 듯 몰려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1988∼2010년 외국인 투자액은 고작 85억 달러였으나 2011년 개혁개방 후 1년 만에 투자액은 5배(404억 달러) 가까이 폭증했다. 미얀마 헌법상 외국인은 부동산 소유가 금지돼 현지인들의 부동산 투자를 부추겼다. 매달 수백만원의 현금(임대료)이 꽂히니 미얀마 부자들은 계속 땅을 사들이고 건물과 아파트를 지어 외국인에게 임대를 놓는다.
이런 부동산 가격 급등은 개혁개방의 ‘그늘’이 돼가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고 들어왔다가 초기 투자비용 부담으로 쓴맛만 보고 철수하는 업체가 늘고 있어서다. 고성민 코트라 양곤무역관 차장은 28일 “한국의 경우 150개 기업이 진출해 있는데 임대료, 인건비 압박으로 중소기업은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얀마 내에서도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양곤 중심가 112㎡ 크기의 주택 가격이 8억원대다. 월급쟁이나 서민들은 양곤 외곽 변두리에 산다. 정부가 소득세를 15%에서 37%로 배 이상 올렸지만 부자들의 부동산 사재기는 잠재우지 못하고 애꿎은 서민들만 세금폭탄을 맞았다.
킨 마우 탄 미얀마부동산협회장은 “양곤 외곽에 임대주택과 사회기반시설을 충분히 짓고, 소득세도 보유 부동산 구간별로 차등화해 서민 부담을 낮춰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없어서 못 파는 중고차
부동산 가격 급등 말고 개혁개방으로 인한 후유증은 별로 없어보였다. 개인의 자동차 수입이 허용돼 차값이 크게 떨어진 것은 미얀마 국민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이다. 2011년 이전 한국 소형차 ‘티코’ 중고가가 미얀마에선 2000만원이 넘었다. 일본 소형차 도요타 ‘브라도’ 2000년식은 3년 전 3억원에 판매됐다. 지금은 2500만∼3000만원가량이다. 관세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마냥 싼 건 아닌데도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구매가 크게 늘었다. 2011년 약 28만대였던 승용차는 지난해 말 41만대까지 증가했다. 특히 1300㏄ 이하 승용차 시장규모는 2011년 658만 달러에서 이듬해 2억2832만 달러로 33배 가까이 급증했다.
양곤 시내에는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산 중고차가 대부분이었다. 일본기업이 미얀마 군부시절부터 자동차시장을 선점, 부품 조달이 원활해서다. 한국산 자동차는 버스, 트럭이 많았다.
양곤의 한 중고차업체 묘 진 윈 사장은 “개방 전 양곤에 자동차 매장은 한 곳뿐이었는데 지금은 200곳 정도 된다”며 “정부가 자동차 할부시스템을 구축하면 서민들도 자동차를 많이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급 모아 사는 스마트폰
양곤무역관 계약직원인 사이 조 무이(26)는 지난해 몇 달치 월급을 모아 80만원을 주고 애플 ‘아이폰’을 장만했다. 미얀마 생산직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90∼110달러, 중간관리자가 600달러 선인 걸 감안할 때 고가의 스마트폰은 서민에겐 1년 치 월급과 맞먹는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률은 3년간 한 자릿수에서 65%가량으로 껑충 뛰었다. 가구당 평균 스마트폰 1개 정도는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양곤 시내의 휴대전화 대리점 ‘모바일킹’은 평일 대낮인데도 30∼40대 손님들로 북적였다. 모에 추자 사장은 “2010년 한 곳이었던 대리점이 지난해 11곳으로 늘었고 올해도 5곳이 문을 연다”며 “10만∼30만원대 중국 화웨이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지만 중상류층은 고가의 삼성 갤럭시 제품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휴대전화, 인터넷을 일반인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돼 얼마나 좋으냐”면서 “개혁개방 후 생활이 나빠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자유 상황은
‘열린사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언론에도 반세기 만에 자유가 주어졌다. 1964년 모든 민영 일간지가 폐간된 후 미얀마 언론은 관영 일간지가 유일했다. 그러나 지난해 민영 일간지 발간을 허용, 현재 20개의 일간지와 4개 방송국이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지난 10∼12일 양곤에서는 미국 하와이대 동서센터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2014 국제미디어콘퍼런스가 ‘자유 언론을 향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37개국 400여명의 기자들이 미얀마 언론자유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보란 듯이 이달 초 의회가 통과시킨 ‘미디어법’에 서명했다. 언론은 더 이상 국가의 통제와 검열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언론인이 국가 기밀을 제외하고 모든 정보를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가안보, 법규,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내용은 출판할 수 없으며 어길 경우 해당 언론을 정간시킬 수 있는 인쇄·출판 규제 법안도 있다. 무엇보다 미얀마 언론자유가 시민의 저항으로 쟁취한 것이라기보다 정부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보니 언론 스스로 정부 비판에 위축돼 있는 측면이 적지 않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현재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 의장인 아웅산 수지 여사는 9일 콘퍼런스 사전행사에서 “누군가 내게 미얀마에서 완전한 언론자유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미얀마 일간지 ‘스트리트뷰’의 4년차 기자 와이 얀 표 나잉은 “언론의 자체검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우리에겐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곤=글·사진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