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無人時代-무인시대 그늘] 대면접촉 점점 더 불편 소통 부재로 이어져
입력 2014-03-29 02:52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극소화한 ‘무인(無人) 현상’은 과연 우리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될까. 10년, 20년 뒤엔 공상과학영화처럼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와 소통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런 세상을 상상하기엔 벌써 여러 부작용과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기계와 사람의 ‘노동력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무인서비스로 줄어드는 일자리는 주로 비정규직 등 노동취약계층의 몫이다. 국내 서비스업 종사자는 2007년 824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11.1%였다. 이 수치는 2012년 977만2000명으로 늘었는데 2007∼2012년 6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3.4%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서비스업 매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8.8%다. 고용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의 절반도 안 되는 건 그만큼 노동자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2010년 7417명이던 고속도로 요금징수원은 지난해 7346명으로 줄었다. 도로교통공사는 “요금징수원 일자리가 줄고 있어 일부는 콜센터에 전환 배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경비 아저씨’의 자리는 CCTV와 관제시스템 등 저비용 무인경비시스템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경비원을 줄인 아파트는 2007년 5.5%에서 2010년 20.2%로 뛰었다.
일부 무인서비스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무인민원발급기를 통한 주민등록등·초본 발급은 754만6463건으로 방문발급(7663만6229건)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지난달 무인발급기 수수료를 방문발급(400원)의 절반으로 내렸지만 아직 큰 반응이 없다.
2008년 GS리테일은 멀티밴더로만 구성된 ‘무인편의점’을 인천국제공항 등에 열었다가 지금은 사업을 접었다. 예상과 달리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2011년 선보여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가상스토어’도 비슷한 처지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모바일 매출은 전반적으로 급성장했지만 가상스토어 매출은 그리 좋지 않아 체험관 형태로 남겨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도 ‘스마트 지점’ 확장에 신중해하는 눈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는데 아직 매출로 이어지는 효과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무인모텔은 종업원이 고객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는다. 청소년 출입을 막기 어렵게 되자 제주도는 지난달 무인모텔을 규제토록 조례를 개정했다. 3년 새 무인모텔이 급증하면서 ‘부정적 이미지’ 탓에 인근 농촌체험마을에서 계속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무인시대’가 ‘고립시대’로 이어지리란 우려도 있다. 한동대 심리학과 신성만 교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사회화를 경험하는데 기계를 매개로 삼다 보니 대면접촉은 더 불편해지고 소통 역량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무인화는 효율적이긴 하지만 사람 사이에 오가는 서비스의 유연함까지 갖출 수는 없다”며 “사회성·공공성을 띤 영역까지 무인화가 침투하는 현상은 고민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