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간송 문화재 76년 만의 외출
입력 2014-03-29 02:10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조금은 실망스러운 전시였다. 지난 21일 개관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디자인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간송문화(澗松文華):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얘기다. 6월 15일까지 제1부 ‘간송 전형필’, 7월 2일부터 9월 28일까지 제2부 ‘보화각’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1년에 봄과 가을, 딱 두 번 전시를 열어온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이 1938년 미술관 설립 이후 7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나들이에 나서 화제가 됐다. 전시에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 강점기 해외로 유출될 뻔한 우리 문화유산을 재산을 털어 모은 것 가운데 국보와 보물 등 59점이 나왔다. 고미술품이 현대 디자인 공간과 어떻게 어우러질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아쉬운 대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전체적으로는 작품 진열이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물결치는 곡선 디자인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느낌이었다. 럭셔리한 백화점 진열대에 다양한 명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듯하다고나 할까. 회화와 도자기 등 유물의 특성에 맞게 작품 부스를 디자인할 수는 없었을까.
한글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은 한국 디자인의 원형이란 점에서 특히 주목 받았다. 간송이 1940년 7월 훈민정음 원본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서울 기와집 열 채 값(1만원)을 주고 구입한 문화재다. 그러나 보안상 설치한 관람저지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망원경 없이는 글자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전시장에는 명품 도자기도 즐비하다. 1930년대 경매 최고 낙찰가(1만4580원)를 기록한 작품이자 조선백자를 대표하는 최상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존 개스비로부터 어렵사리 구입한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제65호), 독특한 모양의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 등등. 도자기 전시의 생명은 조명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호림박물관 및 삼성미술관 리움의 도자기 전시를 보면 강렬한 조명이 작품을 빛낸다. 작품에 내리꽂힌 조명이 겹겹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또 다른 볼거리를 연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송 전시는 진열대 위의 하얀색 조명등으로 명품을 비추고 있다. 국보급 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도 간송미술관의 좁은 공간에서 길게 줄을 서며 불편하게 관람하던 것에 비하면 불평할 것도 없다. 회화 작품은 널찍한 공간에 자리 잡아 관람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간송이 1936년 일본 오사카 야마나카 상회에서 되찾아온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에 수록된 ‘월하정인’ ‘단오풍정’ ‘쌍검대무’ 등 신윤복의 풍속화 30점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가로 8m18㎝에 달하는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蜀棧圖圈)’도 볼거리다. 사방이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어 길이 험하고 풍광이 뛰어난 중국 촉나라의 풍광을 그린 현재의 절필작으로, 작품 전체를 펼쳐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간송미술관에서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2부 전시에 나올 혜원의 ‘미인도’도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낯선 공간에서 처음 시도하는 전시여서 시행착오가 생기게 마련이다. 간송 전시는 앞으로 3년 동안 DDP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관람객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 간송이 지켜낸 우리 문화재를 최적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공유토록 하는 게 ‘76년 만의 첫 외출’에 담긴 의미가 아닐까.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