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영성] 손… 순종과 인내로 이웃을 보듬다
입력 2014-03-29 02:17
손은 우리를 이어준다. 자연과 이어주고, 타인과 이어주고, 하나님과 이어준다. 손은 사랑으로 우리를 이어준다. 농부의 거친 손은 때를 기다려 땅을 갈고 씨를 뿌린다. 자살 기도자를 붙잡은 이의 손엔 절망을 건져내는 간절함이 있다. 수화(手話)는 소리 없는 세계의 언어다. 침묵과 소리를 이어주는 사랑의 언어다.
엎드려 기도하는 이의 두 손은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은 기도자의 눈물을 손으로 받으신다. 너희가 부르짖으면 내가 너희 기도를 들을 것(렘 29:12)이라고 했다. 시인 정호승은 ‘손에 대한 예의’에서 “들녘에 어리는 봄 햇살을 손 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이라고 노래했다.
노동하는 손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고 한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노동을 신성한 의무이자 축복이라고 했다. 경남 합천 황매산 기슭에서 농사짓는 시인 서정홍(57)씨와 지난 25일 저녁 무렵 통화했다. “땅이 풀리면 가장 먼저 심는 작물이 감자예요. 오후 늦게 비가 온다고 해서 1000㎡ 땅에 종일 괭이질을 했어요. 다 심고 나니 비가 내리네요.”
하루 일을 다 마친 농부의 뿌듯함이 배어났다. 서씨는 두 칸짜리 흙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다. 배추 매실 감 대추 생강 고구마 땅콩 등 70여 가지 작물을 기른다. “농사짓는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에요. 김연아도, 박지성도, 대통령도, 목사도 모두 먹어야 살아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을 씹고 살 수 없고 아무리 집이 넓어도 벽을 뜯고 살 순 없죠.”
그는 물자가 풍족해지면서 우리가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의 유래와 귀함을 잊어간다고 안타까워했다. “요즘 아이들은 냉장고에서 음식이 나오는 줄 알아요. 노동이 없으면 양식도 없는데….” 서씨는 노동을 기도라고 여긴다. “등에 땀이 흐르면 영혼이 맑아져요.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돼요. 저절로 착해져요.” 예수원을 세운 대한성공회 대천덕 신부도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고 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백합화도 피우시는 하나님은 농부에게 알맞은 햇빛과 비를 허락하신다. 노동은 우리가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한다. 손을 쓰지 않는 노동은 없다. 서씨는 이웃을 위해 일하는 손을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일하는 손은 아름다운 것 같아요.”
희망 주는 손
15분. 일생의 100만분의 1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순간이 될 수 있다. 다리 난간에 매달린 자살 기도자에게 손을 내민 15분. 영혼의 숨이 멈춰버린 이에게 말씀을 전하는 15분. 절망한 이의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15분. 우리가 누군가에게 내민 손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1시쯤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김지만(41) 경사는 한강 마포대교 난간에서 동료들과 20대 청년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었다. 청년은 “죽게 놔둬! 놔둬!”라고 소리쳤다. 김 경사와 지난 24일 걸어서 현장을 다시 찾았다. “사실 그때는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다행히 1시15분쯤 청년은 구조됐다. 구조 직후 김 경사의 손과 팔엔 멍이 들고 피가 났다. 왼손에는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자살을 거꾸로 말하면 ‘살자’잖아요. 죽을 용기로 살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마포대교를 관할하는 여의도지구대에는 월 평균 30∼40건의 자살 기도자 신고가 접수된다. 경찰관들은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수시로 다리를 순찰한다. 김 경사와 돌아오는 다리 난간에는 자살방지용 문구가 줄지어 있었다. 그중 ‘제 손을 잡으세요’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는 영등포 쪽방촌 인근에서 사역한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A씨(57)가 18일 임 목사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 죽으러 가려고 해요. 천국 가도록 기도해주세요.” 임 목사는 A씨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이 형제가 소망을 갖도록 마음을 바꿔 주세요.” A씨는 마포대교에서 다시 목사에게 전화했다. “저 1분 뒤에 떨어집니다.” 경찰들이 그를 둘러쌌다. 임 목사가 미리 신고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 주일예배에 나왔어요. 살라는 하나님 뜻인 것 같다며 이제 열심히 살 거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손길이 그 생명에 닿은 거지요.”
기도하는 손
예수님은 네 마음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고 했다. 우리는 손으로 이 계명을 따를 수 있다. 기도와 구제다. 크리스천의 두 손은 이웃을 돌아봐야 하고 하나님께로 늘 모아져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교회의 사명도 같을 것이다.
B집사는 최근 교회에서 한 교인의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파트 관리비가 넉 달이나 밀렸다고 하더라고요. 며칠 전엔 학교 다니는 딸에게 교통비를 주려고 집에 있는 동전을 탈탈 털었다고 해요. 남편은 실직하고 이 일 저 일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B집사는 그 교인의 가정을 위해 며칠 동안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그 가정에 위로를 주시고 회복될 수 있게 해주세요.’ B집사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님은 기도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믿고 기도했어요.” B집사가 소속된 교회는 대심방을 통해 교인의 사정을 듣고 구제비를 내줬다. 교인이 소속된 교구 목회자는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 떠올랐다. 어려운 분들에게 우리의 기도와 관심이 미치길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손은 ‘혀’다. 열아홉 살 때 청각장애인 남편으로부터 수화를 배운 조태순(76) 아세아농아인선교교회 목사는 “제 손이 약간 통통하고 적당히 길어요. 농아들이 제 수화를 쉽게 이해해요. 손가락이 너무 길면 우리가 혀 짧은 소리를 듣듯 수화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거든요”라고 했다. 조 목사는 노점상과 시비 붙은 한 농아인을 구해준 적이 있다. “수화로 ‘보여 달라’는 게 엄지와 중지를 세우는 건데 노점상은 농아가 자기 눈을 찌르려 한다며 두들겨 팼어요. 제가 뜻을 설명해주자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농아에게 사과했어요.” 조 목사는 1980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수화 설교를 하다 97년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전 손을 소중히 가꿔요. 제 손에서 복음과 사랑이 퍼져나가잖아요”라고 했다. 조 목사의 손은 소리 없는 세계와 사랑으로 연결돼 있는 것 같다. 내 손은 무엇과 연결돼 있나 가만히 내려다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시편 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