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6) 멕시코시티 한인교회 아이 손에 담긴 사랑

입력 2014-03-29 02:57


아이는 바나나를 도시락 위에 얹어준다. 아직 스페인어에는 서툴다. 하지만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한다. 도시락을 든 이들이 길게 줄을 섰다. 병철이에게 바나나를 받는 의례를 통과해야 식사 준비가 끝난다. 조막만한 손이 바나나를 주면 그것을 받아든 거칠고 뭉툭한 손들은 따뜻해진다. 1주일간 기다려 온 밥 한 끼다.

“고맙구나”

꾀죄죄한 모습의 노숙인 아저씨도, 반쯤 눈이 풀린 마약 중독자도, 남편 없이 아이를 기르는 미혼모도 병철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멕시코시티 한인교회는 1주일 한 차례 빈민들에게 밥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 교회에서 하루 짐꾼으로 봉사했다. 내 눈에 병철이란 아이가 계속 들어왔다. 교회 집사님의 조카라고 했다. 눈가에 장난기 가득한 어린 일곱 살 꼬마였다.

병철이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마지막 사람에게까지 바나나를 다 나눠준다. 교인 10여명이 음식을 준비하고 배식했다. 병철이도 한몫한 셈이다. 천진난만하게 임무를 완수한 녀석은 다시 철부지 아이로 돌아간다. 이 나라에서 빈민들에 대한 복지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마약 중독자, 노숙인 등은 정부의 관리 선 밖으로 벗어난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멕시코한인교회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작게나마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일손을 돕는 틈틈이 멕시코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먹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어느 누구도 반찬이 형편없다고 투덜대지 않는다.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하며 먹는 가족에게서 단출한 평안이 느껴진다.

초라한 행색으로 홀로 먹는 이를 보면 그가 겪었을 회환에 대한 연민이 인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멋쩍은 웃음만 보이고 시선을 돌렸던 것 같다. 미안했다. 불현듯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누군가를 위해 진정으로 나누지 않고 있구나.’

불필요한 소유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나눠줄 수 있는데도 적당한 선을 그었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며 나를 합리화해왔다. 어쩌면 봉사라는 ‘가식’으로 나 자신의 만족을 우선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실하게 두 팔을 벌려 그들을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도 스스로 원해서 교회에서 나눠주는 밥을 먹으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때론 그들의 의지만으로 버틸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세차게 인생을 부수어 버릴 때가 있다.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이들은 거칠고 추운 세상으로부터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는 단 한번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이방인인 한인들. 한인교회 크리스천이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다. 밥 한 끼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손과 가슴에는 사랑이 있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역할이 그런 게 아닐까, 묵상하게 된다.

병철이는 식사시간 내내 여기저기 휘젓고 다닌다. 녀석이 장난치며 다니는 자리마다 사랑의 온기가 가득하다. 사람들이 미소 짓는다. 나는 병철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지금보다 더 넓은 곳에 사랑을 퍼뜨리길 기도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했다. 멕시코시티 빈민들의 옹송그린 아픔에 희망을 나눠주는 하루는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하루보다 더 감사한 시간이었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