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독일 방문] 獨 분단의 상징 ‘그뤼네스반트’서 DMZ 미래를 만나다
입력 2014-03-28 04:07
박 대통령, DMZ·그뤼네스반트 사진전 관람
‘그뤼네스반트(Gr몕nes Band).’ 녹색지대란 뜻의 이 독일어는 동서독 분단시절 접경을 지칭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미국과 소련(현재의 러시아)에 의해 양분됐다. 그뤼네스반트는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가 팽팽하게 대결하는 긴장의 선이었다. 양쪽 진영은 군사적 긴장 완화를 구실로 서로 맞댄 국경의 중간지대를 만들었고, 이곳은 산림과 수풀이 우거진 일종의 그린벨트가 됐다.
남북한을 갈라놓은 비무장지대(DMZ)와 똑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수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이곳에 막혀 붙잡히거나 죽음을 당한 곳이다. 1990년 통일을 이룬 독일 연방정부는 전체 그뤼네스반트 가운데 일부를 그대로 보존했다. 왜 독일이 분단될 수밖에 없었으며, 어떻게 그런 슬픈 역사를 스스로 이겨냈는지를 후대에 알려주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철조망이 있던 자리에는 자전거길이 놓이고 이 길을 따라 독일인들은 그들을 갈라놨던 냉전시대와 분단을 기억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베를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린 ‘DMZ·그뤼네스반트 사진전’을 관람했다. 전시회가 열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시내 중심부에 남아 있던 1.3㎞ 길이의 장벽에 세계 21개국 작가 118명의 벽화를 설치한 야외 전시관이다. 분단의 비극이 벌어졌던 아픔의 장소가 통일 이후 화해와 기쁨의 장소로 변모한 곳이다.
사진전은 DMZ와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소재로 한 다양한 사진들을 비교 전시함으로써 같은 분단의 역사를 겪어온 독일을 통해 우리의 통일 의지와 비전을 되새겨보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의 분단과 DMZ’ ‘독일의 분단, 통일 그리고 그뤼네스반트’ ‘경계를 넘어-지금, 우리’ ‘플래시 월’ 등 4개의 주제로 수많은 사진과 설치작품이 전시됐다.
우리의 분단 역사 현장과 독일의 분단 과거사가 공존하는 바로 이 공간 속에서, 아마도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적극 피력했던 ‘DMZ 평화공원’의 미래를 떠올렸음직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세계적인 평화공원으로 만들어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이 남북한 분단 현실을 확인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구상을 밝힐 때부터 박 대통령은 독일의 그뤼네스반트를 염두에 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그뤼네스반트는 독일 통일 이후 시민단체인 ‘독일 환경 및 자연보호 연합(BUND)’이 정부 지원을 받아 동서독 접경지역을 보존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만들어졌다. 박 대통령은 DMZ 평화공원을 이 같은 방식으로 탄생시키고 싶어한다. 통일부에 이미 추진단이 발족됐고, 정부가 주도하면서도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설계단계에서부터 폭넓게 참여해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동행한 독일 인사 가운데는 72년 그뤼네스반트를 통해 극적으로 동독을 탈출한 뒤 세계 정상급 연극·오페라 연출가로 거듭난 아힘 프라이어 베를린예술대 교수도 눈에 띄었다. 프라이어 교수는 2011년 우리 판소리 ‘수궁가’를 연출해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 인물이다.
사진전을 둘러본 박 대통령은 “분단의 아픔을 딛고 통일과 자유의 상징이 된 장소에 우리 DMZ 전시가 열리는 것이 참 뜻 깊다”면서 “DMZ도 언젠가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란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베를린=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