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해외 직구’ 열풍] 배송 불안·불편 끝… 도매상 찾아 발품

입력 2014-03-28 03:14

“우리 가게에서 샀다고 소문내지 마세요. 거래처 다 잘려요.”

27일 오전 찾은 서울의 한 반려동물 물품 도매상. 수입 제품을 동네 동물병원과 애견상점에 도매가로 납품하는 곳이다. 일반 소매 손님에게는 팔지 않는다는 주인을 붙잡고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23만8000원짜리 고양이 사료 한 박스를 15만5000원에 구입했다.

이곳에서는 고객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온라인에 가게 칭찬 글 올리지 않기’다. 얼마 전 이 도매상은 시중가의 거의 절반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 손님들 때문에 가게 문을 닫을 뻔했다. 손님들이 앞 다퉈 후기를 올리자 생산업체가 “소매 고객에게는 시장가로만 판매하라”며 물건 공급을 끊은 것이다.

이 상점은 이제 가게 사정을 은밀히 알고 오는 손님에게만 물건을 내주고 있다. 그럼에도 생산업체에서 물건을 받아오는 날이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온 소매 손님들이 인기 제품을 싹쓸이해 간다.

배송 기간이 길고 반품이 어려운 ‘해외 직구(직접 구매)’보다 국내 도매상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직구만큼 가격이 저렴하고 배송 중 분실되거나 파손될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품목별 도매상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는 글들이 인기다. 인기 품목은 여성의류부터 애견용품, 그릇, 냄비, 소주, 이불, 막걸리까지 다양하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데 ‘달인’이 된 소비자들은 몇 가지 공통된 철칙을 강조한다.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 갈 것, 공장에서 물건 들어오는 날을 알아둔 뒤 그날 또는 이튿날 방문할 것, 너무 많이 깎지 말 것, 소문내지 말 것 등이다.

정해진 거래처들이 주 수입원인 일부 도매상은 ‘푼돈 고객’인 일반 손님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이 많이 들어온 날을 노려 가게가 한가한 시간에 가야 구매 성공률이 높다. 어차피 소매가보다는 훨씬 싸기 때문에 가격을 흥정하는 건 금물이다.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도매상에게 “곧 가게를 개업하려 하니 샘플로 몇 개만 달라”며 설득하는 수법은 유명하다.

도매상을 찾아가는 게 번거로워 생산공장과 직거래하는 고객도 있다. 최근 경영난에 시달리는 일부 공장들은 온라인을 통해 일반 소비자의 주문을 직접 받아 시중가의 40∼50% 가격에 물건을 팔고 있어서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