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어벤져스 팀들이 서울 김밥집서 회식을…” “교통대란·영세상인 영업중단은 어떡해”
입력 2014-03-28 03:47
[친절한 쿡기자]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서울을 공격합니다. 대피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는 30일부터 약 2주간 강남대로와 마포대교,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 등 서울의 ‘얼굴’이 로봇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쑥대밭으로 바뀔 겁니다.
불경기와 취업난 속에서 어렵게 지킨 우리의 보금자리와 일터가 모두 파괴될지도 모르는데 서울시민의 표정에서 절망이나 공포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합니다. 왜? 우리에겐 ‘어벤져스’가 있기 때문이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의 속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 2’)의 한국 촬영이 임박하자 영화 마니아의 기대감도 부풀어 올랐습니다. 27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어벤져스 2’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김밥집이나 보쌈집 앞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적에게 총구를 겨눈 블랙 위도(스칼릿 조핸슨), 망치를 들고 민속촌에서 떡메치기를 하는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용산전자상가에서 잘못 구입한 부품으로 슈트가 고장 나 쓰러진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영화의 주인공들을 합성한 패러디물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어벤져스가 적과 용감하게 싸웠지만 ‘쉴드’(어벤져스의 비밀조직)는 결국 전세대란 때문에 서울지부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퇴각할 것”이라거나 “천하의 인공지능 로봇도 장마철에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공격하면 어벤져스보다 무서운 침수를 경험할 것”이라는 농담도 SNS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할리우드의 정상급 배우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열연하고, 전작에서 약 1조6000억원의 수익을 올린 블록버스터를 통해 서울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된 반응들입니다.
물론 모두 환영하는 건 아닙니다. 촬영지 인근 정류소나 아파트에 ‘도로 양방향 전면통제’ 안내문이 붙기 시작하면서 교통대란이나 영세상인의 영업중단 등 현실적인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벤져스 2’의 한국 촬영으로 관광수익 876억원 등 12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불편은 촬영지 인근 주민이나 상인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통행량이 많은 지점을 공격하는 걸 보니 적이 작전을 잘 세웠다”거나 “강남대로 상권의 하루 임대료가 증발한 것만으로도 적은 공격에 성공했다”는 말도 그냥 나온 농담이 아닐 겁니다.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 제작사의 약속도 냉소를 낳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전개로 볼 때 서울은 ‘어벤져스’의 지원만 기다릴 뿐 무기력한 모습으로 파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아닌 한국군이 얼마나 미군에 의존하는지 보여주는 계기”라는 한 트위터 네티즌의 발언이 많은 공감을 얻은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서울로 침공하는 적이 인공지능 로봇인지 어벤져스인지는 영화가 개봉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