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내 모든 정보와 흔적을 지워주세요”… 김중혁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입력 2014-03-28 02:35


소설가 김중혁(43)의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은 지워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딜리터(deleter)’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비밀을 탐정에게 의뢰해 세상에서 지워지게 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탐정의 이름은 구동치. 누군가의 과거가 담긴 하드디스크며 일기장,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것을 딜리팅 해주는 게 구동치의 업무이다. 그의 사무실엔 1920년대에 녹음된 이탈리아 테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11쪽)

이 사무실에 고객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 그럼 일 얘기를 해볼까요?”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삭제해주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들었다면 그런 거겠죠.” “저는…실은…딜리팅에 대해서 상의하려고 왔습니다.”

이영민이라는 고객은 같은 테니스클럽에 다니는 여자의 소개로 사무실을 찾았다며 구동치에게 자신에 대한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와 흔적을 지워줄 것을 의뢰한다. “구동치는 이영민의 눈을 보았다. 깊은 곳에 불안이 있었다. 그 불안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구동치는 상관하지 않았다. 눈 속의 불안은 아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와 같다. 불안하지 않으면 아무도 탐정을 찾지 않을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에 먹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51쪽)

딜리팅은 사람들의 불안을 먹으며 성장하는 신종 직업인 것이다. 구동치와 계약한 사람은 죽은 뒤에 기억되고 싶은 부분만 남기고 떠날 수 있다. 힘 있는 재력가와 그의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거래가 성립되고 그들로부터 비밀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은 구동치는 점점 깊게 그 검은 거래에 휘말린다. 급기야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구동치의 삶을 억누르고 그는 점점 자신의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무실에 침입한 놈이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었을까. 구동치는 며칠 동안 열쇠 전문가들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의심되는 전문가가 다섯 명쯤 있었는데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했다.”(119쪽)

소설은 인간의 불안을 미끼로 성장하는 이른바 불안산업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김중혁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삶의 자취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생은 딜리팅에 의해 지워지거나 수정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