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무리는… 복거일 장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입력 2014-03-28 02:34
소설가 복거일(68)의 장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는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상케 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서울 거리의 풍물과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보씨의 유동적인 내면 의식을 포착했듯,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역시 현이립이라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복합적인 내면 의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분단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와 주변부 지식인들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다룬 ‘보이지 않는 손’(2006)에 이은 ‘현이립 3부작’의 완결편이기도 하다.
소설은 아내가 친정에 혼사가 있어 집을 비운 어느 날 아침, 뒷산의 짙어진 봄빛을 보고 산책을 나간 현이립이 자택이 있는 서울 은평구 불광천을 출발해 가장 멀리 떨어진 가양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징검다리 건너 산책길에서 우연히 노인들의 화투판을 보게 된 그는 이런 상념에 빠져든다. “인류는 늙은 개체들이 존재하는 유일한 종이다. 자연엔 자연사가 없다. 늙으면 사자도 하이에나의 먹이가 된다. (중략) 결국 곧 죽을 노인 계층이 아직 투표권이 없는 미래 세대들의 몫을 앞당겨서 소비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보편적이어서 비록 점진적인 변화였지만, 어떤 나라에서 일어난 어떤 혁명보다도 훨씬 혁명적이었다.”(36∼37쪽)
산책의 명분은 ‘역사 속의 나그네’라는 3부작 소설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다음 작품 구상을 위해 조금 쉰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이립의 머릿속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산책길에서 만난 가게들, 그 가게의 점원, 길 위의 사람들, 동식물들 모두가 그에게 이 사회의, 그리고 이 세상의 이치와 방향을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산책로 저만치 무더기로 핀 꽃다지를 보면서도 그의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무리는 아름답다. 개체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훌쩍 뛰어넘는 ‘창발적 아름다움’을 무리는 지녔다. 그리고 무리는 개체들의 개별적 중요성을 본질적으로 초월하는 생물적 중요성을 지녔다. 무리의 창발적 아름다움과 무리의 초월적 중요성 사이엔 분명히 깊은 관련이 있다. (중략) 개체들은 모두 자신의 중요성을 극대화해서 행동하도록 진화했다.”(72∼73쪽)
현이립은 이처럼 지식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자이다. 산책길에서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현이립이야말로 작가 복거일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작인 ‘보이지 않는 손’의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은 어떤 뜻에선 나의 자서전이다”라고 밝히기도 했거니와 이 작품의 ‘작가의 말’에서도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씀으로써 그 자서전을 완결한 셈”이라고 밝히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주인공 현이립이 간암판정을 받고도 글을 쓰기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마저 2년 반 전 간암 판정을 받은 복거일 자신의 상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복거일은 작중 현이립을 두고 “암 치료를 받다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작가들을 곁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그는 꼭 써야할 작품을 떠올리며, 단순한 생명 연장보다 삶의 가치를 좇기로 결심했다”라고 썼다. 그렇기에 현이립의 산책길은 실제로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글쓰기에 몰두한 복거일 자신의 특별한 산책길로 다가온다. 암에게 삶을 송두리째 내놓을 수는 없다는 복거일의 투병방식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하겠다는 우리 시대 지식인의 또 다른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