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중국군 유해 보내고 난 뒤에는…
입력 2014-03-28 02:44
“북한군 유해 송환 추진하고 적군묘지에 통일박물관 조성하는 방안 모색하길”
6·25전쟁 때 숨진 중국군 유해 437구가 28일 중국으로 송환된다. 남의 나라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유명을 달리한 지 60여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국방부는 중국군 유해, 유품, 감식기록지를 개인별로 구분해 중국에 전달한다.
그동안 정부는 제네바협약에 따라 발굴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중국군·북한군 묘지’(적군묘지)에 안장했다. 또 1981년부터 97년까지 중국군 유해 43구를 북한을 거쳐 중국에 송환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중국군 유해 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정부의 인도적인 중국군 유해 송환은 중단되고 말았다.
오랜 기간 난관에 봉착했던 중국군 유해 송환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해 송환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중국 정부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적군묘지를 찾은 중국 참전 군인들은 우리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양국은 수차례 실무협의를 벌여 지난해 말 유해 송환 절차에 합의했다.
유해 송환은 한·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발전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전장에서 총구를 겨눴던 과거의 역사를 뒤로하고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데 이어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유해까지 송환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대외교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나라로 부상했다. 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떠올랐다. 툭하면 역사 왜곡을 일삼고 동북아 안정을 해치는 언행을 마다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공동전선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사 인식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다. 2010년 10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행한 그의 발언 때문이었다. 당시 시 부주석은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고 세계 평화와 인류 진보를 지켜낸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했다. 그의 역사관은 우리 국민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이전과는 변화된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와 한반도 통일 방안에 대한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가진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북의 핵 보유를 확실히 반대한다”며 “중·북 간에 이견이 있지만 중국 측 방식으로 북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확고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양국 정상이 한반도 통일 논의를 한 것은 이례적이고 건설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이 회담에서 시 주석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을 자신이 지시했고, 박 대통령이 희망한 대로 시안 근교 광복군 주둔지에 기념 표지석을 조만간 준공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뜻 깊은 일이라고 화답했다. 일제 만행에 관한 한 양국 정상이 ‘찰떡궁합’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중국군 유해 송환을 계기로 적군묘지에는 북한군 유해들만 남게 된다. 앞으로 남한 지역에서 추가로 발굴되는 중국군 유해는 중국으로 송환되겠지만 북한군 유해는 예전처럼 적군묘지에 임시로 안장될 것이다.
이제 북한군 유해를 송환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생사를 함께했던 중국군이 유해를 모두 인수하는 마당에 북한군만 남녘에 유해를 방치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북한은 휴전선 이북 산야에 묻혀 있는 한국군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남방한계선에서 5㎞가량 떨어진 적군묘지는 5204㎡(1577평)에 달한다. 북한군 유해마저 모두 송환되면 적군묘지는 빈터로 남을 것이다. 그 빈터 또는 주변에 통일역사관이나 통일박물관을 조성하는 것을 검토하면 어떨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