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美 기부문화는 믿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
입력 2014-03-28 02:30
세상을 바꾸는 착한 돈/기 소르망/문학세계사
세계적인 석학 프랑스의 기 소르망이 작심하고 미국의 기부 문화 탐험에 나섰다. 그가 미국의 다양한 기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2012년 6월부터 1년간 발로 뛰며 탐구한 이유는 뭘까.
그는 “미국의 독창적인 기부 정신을 하루 빨리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현안과 관련돼 있다”며 “현재 모든 유럽 국가들은 사회연대, 고등 교육, 비상업적 문화 발전을 위한 분배적 역량이 바닥나버렸다”고 설명한다. 정부 주도의 복지 정책이 재정 부담 등으로 한계에 다다른 유럽의 현실 타개책을 미국에서 찾아보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암울한 분위기와 달리 미국은 국가도 시장도 아닌 제3의 영역, 이른바 시민 사회가 나서 양극화 해소는 물론 교육과 문화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기부로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1860년대 인공 조성한 공원은 1960년대 들어 무법천지로 변해버렸다. 본업이 정원 디자이너인 엘리자베스 로저스가 팔을 걷고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센트럴파크 보호단체(Central Park Conservancy)’를 만들어 매주 3시간씩 제초작업을 하는 등 자원봉사를 펼치면서 쓰레기 없이 완벽한 공원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이다. 소르망은 “미국이란 나라는 이렇게 무능력하고 부패한 공권력을 대신해 시민사회가 움직이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조직되는 곳”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이러한 미국의 독특한 기부 문화가 가능한 것은 처음 국가가 형성됐을 때부터 자발적 기부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있었고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라는 점이 컸다고 지적한다. 미국인의 80%가 자칭 크리스천으로, 기부를 통해 믿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현실은 종교에 회의적인 유럽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미국의 기부문화는 신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 기부의 규모와 중요성은 경제 순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서 “미국인들의 박애적 기부는 자선 활동을 의미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가난과 질병, 차별과 무지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트트 기술고문 같은 수퍼리치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앨 고어 전 부통령 등 정치인들의 기부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다. 게이츠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매년 7억 달러를 아프리카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해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성과만 믿고 아프리카의 정치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그의 방식은 개발원조자들의 과오를 답습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또 클린턴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정치적 기부 쇼를 했다고 꼬집었다.
이렇듯 미국 사회 내 기부의 명암을 짚어본 뒤 그가 내린 결론은 무얼까. 그는 기부 문화의 굴절된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부야말로 미래 사회의 대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의적 기관들이 정당성을 빼앗기고 상상력을 잃어가는 오늘, 기부 활동과 자원봉사, 그리고 메세나 활동을 공공 정책 운영에 포함시키는 일은 참여 민주주의, 시민 민주주의 발전에 보탬이 된다.” 안선희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