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청소년 책-오즈의 의류수거함] 외로움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치유의 힘
입력 2014-03-28 02:31
오즈의 의류수거함/유영민/자음과 모음
요즘 동네마다 의류수거함이 있다. 잘 입지 않는 옷이나 작아진 옷들을 그곳에 넣은 경험이 한번쯤은 있으리라. 제3회 자음과 모음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오즈의 의류수거함’의 주인공 도로시는 그곳에 옷을 넣는 대신 들어 있는 옷을 꺼낸다.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지자 학업에 대한 부모님의 압박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도로시. 우연히 의류수거함을 보게 된 도로시는 거기서 옷을 꺼내 팔아 돈을 모아 호주로 이민가겠다고 결심한다. 딱히 주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의류수거함에서 무단으로 옷을 꺼내는 것이니 일종의 도둑질인 셈. 밤에 은밀히 진행되는 작업 와중에 도로시는 사람들을 만난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각자 어둠을 안고 있다. 그 어둠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와 체제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수의사 부부로 행복했던 ‘숙자 아저씨’는 구제역 파동 때 동물들을 살처분한 기억으로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자살한 이후 떠돌이가 된 노숙자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북한 ‘카스 삼촌’은 북에선 출신 성분이 계급을 가른다면 남한에선 돈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 새터민이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아들을 잊지 못하는 ‘마마’는 불우 청소년을 위해 식당을 운영하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폭식을 일삼는다. 부모에게 떠밀려 공부하는 기계로 살던 ‘195’는 유학 간 미국에서 약물 중독자가 되어 돌아온 청년이다.
어느날 도로시는 195가 195번 의류수거함에 버린 물품들을 꺼내게 된다. 195의 일기장을 읽고는 그의 자살 결심을 눈치 채고 자살방지 프로젝트를 펼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 연대해 치유해 나간다. 195는 약물 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고, 도로시는 이민가기 위해 모은 돈으로 조손가정을 돕고 사회복지과로 진학하기로 한다.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새로운 삶에 눈뜨게 해준 의류수거함을 도로시는 ‘나눔, 나누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외로움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치유의 힘’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자기도 치료하고 타인도 구원한다”고 말한다.
자음과 모음의 청소년문학상은 2012년 제정됐으며, 1회 수상작인 ‘시간을 파는 상점’은 최근 청소년 분야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이어 스터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수상작이 없었고, 올해 3회 수상작을 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