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여론에 놀란 檢… 황제노역 중단·벌금환수 착수
입력 2014-03-27 03:31
검찰이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으로 공분을 일으킨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을 중단하고 벌금 집행 절차에 착수했다. 허 전 회장은 이미 5일간의 노역으로 벌금 25억원을 탕감 받은 상황이라 ‘늑장대응’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재산을 팔아 벌금을 내겠다”며 ‘백기투항’ 의사를 밝혔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검사장 강경필)는 26일 “관련법을 검토한 결과 노역장 유치가 집행된 수형자에 대해 형 집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광주지검은 형집행정지 심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허 전 회장의 노역 정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형집행정지 결정은 심사위 의결을 거치지만 검찰이 직권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 이로써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은 일단 중단됐다.
대검은 벌금도 채권으로 볼 수 있어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재산을 파악한 뒤 압류와 공매 절차를 밟는 조치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다. 허 전 회장도 비난 여론에 항복했다. 허 전 회장은 이날 광주지검에 다른 사건의 피의자로 출석해 조사 받는 과정에서 미납된 벌금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국세청과 공동으로 지난 7일 허 전 회장의 자녀 집에서 미술품 100여점을 압수하고 허 전 회장의 숨겨둔 재산인지 조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5일간 허 전 회장의 황제노역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검 관계자는 “은닉 재산이 있다는 구체적 단서가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이를 찾아보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벌금 254억원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한 허 전 회장이 지난 22일 귀국하기 전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이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년인 벌금형 시효는 2012년 부동산 압류로 중단된 상태다. 벌금을 납부할 수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도 허 전 회장을 노역장에 유치했던 검찰이 여론의 비난을 받게 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 사이 허 전 회장은 교도소 청소 등을 하며 25억원(수사 과정에서 체포된 1일을 포함하면 30억원)을 탕감 받았고 내야 할 벌금은 224억원이 남았다.
검찰이 서둘러 고육책을 꺼냈지만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하는 모든 범죄자에 대해 검찰이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법의 형평성에 어긋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헌법소원 제기 등 다툼의 소지가 있지만 충분히 검토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