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독일 방문] 아버지는 분단 현실을 보고… 딸은 통일된 미래를 꿈꾸다

입력 2014-03-27 03:06


정확히 반세기 만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정을 밟아 25일(현지시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는 그곳에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슬픈 눈으로 바라봤고, 딸은 통일된 조국의 밝은 미래를 꿈꿨다.

박 대통령의 베를린 여정은 1964년 12월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방문을 따라갔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서베를린에서 베를린 장벽을 방문해 조국 분단의 현실을 절감했다. 그는 현장에서 “나는 오늘 북한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결코 북한을 볼 수 없었으나 오늘 동베를린을 통해 북한을 보았다”고 말했다. 또 “나는 이제 자유를 지속하겠다는 서베를린 시민의 결의와 동베를린 시민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국도 독일도 통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후 외국 국가원수가 베를린 장벽을 찾은 것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박 전 대통령이 두 번째였다.

박 대통령은 사라진 베를린 장벽 대신 분단 시절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눴던 브란덴부르크문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국정의 주요 화두로 내건 ‘통일 대박론’을 통독의 역사현장에서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박 전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문을 찾지는 않았지만 추후 발간된 ‘방독 소감’에서 이 문을 스쳐지나가면서 북한 생각이 났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동·서베를린의 경계로 전락한 이 건축물 앞에서 남북 분단의 비애를 새삼 곱씹고 통일의 염원과 의지를 다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을 방문한 뒤 1962년 8월 자유를 찾아 동독을 탈출하다가 사살된 18세 건축 노동자의 사건현장에 세워진 기념비에 조의를 표했다. 박 대통령도 이를 따라 전몰자 추모 기념관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베를린 시청도 방문했다. 특히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영접했던 서베를린 시장은 훗날 동방정책(Ostpolitik)을 일궈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브란트 전 총리에게 “나는 베를린 시민의 기분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베를린은 전 자유민의 수도이고 자유의 상징이며 공산주의와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상징”이라는 말을 건넸다. 브란트 전 총리는 “독일과 한국 두 나라의 분할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브란트 전 총리의 방한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50년 전 브란트 전 총리가 바라보는 앞에서 방명록에 서명했던 것처럼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다. 영접은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이 했다. 공교롭게도 보베라이트 시장은 브란트 전 총리가 몸담았던 사회민주당(SPD) 소속으로,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명이다.

달라진 것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후진 약소국이었고, 서독은 신흥 부흥국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전용 비행기조차 없어 서독 정부가 제공한 여객기를 일반 승객과 함께 탄 채 일곱 군데를 경유해 28시간 만에 서독에 도착했다.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순위 세계 15위로 부상한 경제 강국이 됐다. 독일과 함께 주요 20개국(G20)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동등한 국가가 된 것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