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기] 비가 내린 1910년 그날처럼 뤼순감옥은 스산했다
입력 2014-03-27 03:22
“어릴 때부터 안중근 의사 얘기를 듣고 자랐다. 이 동네에서만 수십 년 살았다. 안 의사 유해는 찾았느냐? 유해가 이곳에 있는 것 같으냐?”
지난 25일 오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커우(旅順口)구 상양(向陽)가에 있는 뤼순 감옥에서 가까운 야산 주변 아파트.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주민 천멍쥐안(陳夢娟·72)씨가 먼저 걸어온 말이다. 그는 안 의사가 하얼빈(哈爾濱)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뒤 뤼순으로 압송돼 와 순국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뤼순은 민족의 한이 서린 곳=하얼빈이 안 의사 의거의 현장이라면 뤼순은 순국의 장소로 꼽힌다. 안 의사가 수감됐다 교수형 당한 뤼순 감옥, 그의 유해가 묻힌 묘지, 재판을 받았던 법원이 모두 이곳에 있다.
26일은 안 의사 순국 104주기 되는 날. 순국일을 하루 앞두고 찾은 뤼순 감옥은 대대적인 보수 작업 중이었다. 감옥 정면에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감옥 청사 건물에는 가림막과 함께 “공사로 참관에 불편을 끼쳐 드리게 된 점을 양해바랍니다”라는 빨강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공사로 어수선한 감옥은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봄 날씨와 함께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안 의사가 순국했던 1910년 3월 26일 오후 비가 내려 썰렁했던 것처럼. 뤼순 감옥 측이 안 의사를 교수형에 처한 뒤 작성한 보고서는 “오전에 사형을 집행한 뒤 오후에 비가 오는 중에 유해를 묘지에 묻었다”고 적었다.
이 감옥 한가운데에 위치한 옥사(獄舍) 2층에는 교회실(敎誨室)이란 곳이 있다. ‘가르치고 인도하는 방’이라는 뜻이다. 동태가 수상한 수감자들을 ‘교화’시키는 곳이었다. 안 의사 유해를 입관하는 의식은 이곳에서 진행됐다.
뤼순에 사는 재중동포(조선족)로 안중근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근(63)씨는 “어제부터 보수 공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감옥 개보수 공사는 중국 국가문물국이 최근 일제 침략 관련 유적 등을 일제 재정비하도록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뤼순감옥은 러시아가 1902년 랴오둥반도를 차지한 뒤 이에 저항하는 중국인들을 수감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다. 그 뒤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뤼순을 점령하면서 1907년 증축했다.
이 감옥은 ‘인간 지옥’으로 불릴 만큼 참혹한 곳이었다. 2만6000㎡ 면적에 2000명가량 수용 가능했지만 열 배가 넘는 2만여명을 가두기도 했다. 안 의사뿐 아니라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도 여기서 옥사했다. 단재는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뤼순일본관동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이곳에 수감됐었다. 박 회장은 “뤼순은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라 할 만하지요”라고 말했다.
감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야산인 둥산포(東山坡)에 있는 공동묘지에 갔더니 묘지 바로 앞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박 회장은 “2008년 3월 한국 정부와 함께 이 묘지 반대편에 있는 묘지에서 한 달 동안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을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며 “동산포 어디엔가 안 의사 유해가 묻혔을 수도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박 대통령-시 주석 헤이그 회담은 격세지감=“이 세계적인 재판에서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쓰고 법정을 떠났다. 그의 진술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영국 신문 ‘더 그래픽’의 찰스 모리머 기자는 1910년 4월 16일자에서 안 의사 공판관람기를 이렇게 썼다. 25일 오후 뤼순 감옥에서 가까운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뤼순일본관동법원구지(舊址)’를 방문했을 때 법정 한 곳에는 이러한 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안 의사의 이토 저격은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침략하고 있던 상황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 만큼 안 의사 공판은 방청권이 동이 날 만큼 구미 각국의 관심사였다. 방청권을 300장 발행했지만 법정 밖 사람이 더 많았다.
박귀언 뤼순순국선열기념재단 대표는 “당시로서는 세기적인 재판이었다”며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려다 실패한 것을 안 의사가 법정에서 모두 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종은 밀사 파견이 드러난 뒤 3일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기에 이르렀다”며 역사의 아픈 과거를 되살렸다.
박 대표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하얼빈에 새로 세운 안중근 기념관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은 106년 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뤼순=글·사진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