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담] 朴대통령, 獨 전몰자 추모관 헌화…日에 무언의 경고 날렸다
입력 2014-03-27 03:13 수정 2014-03-27 04:23
독일 수도 베를린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브란덴부르크문에서 500여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전몰자 추모 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독일 정부는 1816∼1888년 프로이센 제국 시절 황제 수비대 파수 건물로 지어진 건물을 1960년 ‘1·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의해 동원된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으로 바꿨다. 이후 1993년 다시 명칭을 변경해 전쟁과 압제에 의한 희생자 기념관이 됐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헌화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희생자들에게 솔직하게 사과하는 독일 정부에 대한 존경 표시로 여겨진다. 이 같은 독일 정부의 모습을 통해 과거사 왜곡에만 몰두하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간접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일정은 대통령궁→브란덴부르크문→베를린 시청→전몰자 추모기념관 등으로 이어졌다. 독일 방문 첫 일정으로 대통령궁에서 이뤄진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과의 환담 및 오찬도 같은 맥락이다.
가우크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독일 대통령으로는 처음 제2차 세계대전 말 나치 독일군이 대학살을 저지른 프랑스 중서부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을 찾아 “피해를 받은 이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살인자들이 심판받지 않은 데 대한 비통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고 참회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앞서 체코와 이탈리아의 나치 학살 현장을 방문하며 나치 과거사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는 50여m 떨어져 자리 잡은 ‘유대인 홀로코스트(대학살) 추모비’가 그대로 보인다. 2711개의 불규칙한 콘크리트 기둥으로 구성된 이 기념비는 홀로코스트가 독일 역사에 어떤 혼돈을 가져왔는지를 재현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운터 덴 린덴로 한가운데 광장에서부터 브란덴부르크문까지 150여m를 걸어 도착했다. 직접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찾아가지 않았지만, 좌·우파 가운데 누가 집권하든 관계없이 전쟁 희생자들에게 행해 왔던 독일 정부의 사죄와 반성 모습을 자신의 일정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으로 짐작된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여전히 부끄러운 과거사를 감추기에 급급한 일본 정치인들을 향해 무언의 경고를 던진 셈이다.
박 대통령은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어머니가 숨진 병사를 안고 있는 ‘피에스타상’ 앞에 헌화했다. 박 대통령이 묵념하는 순간 독일군 의장대원이 ‘충성스러운 동지를 위한 노래’라는 제목의 추모곡을 트럼펫 솔로로 연주했다.
베를린=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