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늑대사냥’ “아웅산 테러 주범 北을 고립시켜라”… 외교부, 1983년 문서 공개
입력 2014-03-27 02:54
정부가 아웅산 폭탄테러 당시 북한을 외교적으로 응징하는 보복 조치를 시행한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또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격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소련과 국교 관계가 이뤄지지 않아 미국 일본 등과 소통하면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대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1648권(27만여쪽)의 외교문서를 26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주로 1983년에 작성된 것이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83년 10월 9일 북한의 아웅산 테러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대통령 순방 수행단 17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자 10월 말 외교적 보복 조치 방안인 ‘늑대사냥’(초기 작전명)을 마련했다. 이 외교작전의 목표는 ‘북괴의 만행과 위해성을 각국에 알려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화시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세계 각국에 대해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내지 북한 공관 폐쇄, 공관 규모 축소 등 외교관계 격하, 공식 규탄과 인적·물적 교류 제한, 유감 표명 등 A∼D급으로 구분해 수립됐다.
A급 목표 대상국에는 네팔 방글라데시 등 13개국이 포함됐고, B급은 싱가포르 태국 등 8개국이었다. C와 D급은 각각 70개국, 17개국이었다.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외교부 장관 친서 발송, 정부 특사 파견 등 계획을 세웠다.
한편 아웅산 테러 사건 발생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출발이 늦어진 것은 미얀마 당국이 출발시간을 오해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측은 전날 미얀마 외무장관의 전 대통령 숙소 도착시간과 출발시간을 각각 5분씩 늦출 것을 미얀마 측에 요청했으나 미얀마 측은 이를 10분씩 늦추라는 요청으로 오해했다. 결국 미얀마 외무장관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전 대통령의 숙소 출발시간도 애초 계획인 오전 10시20분보다 3분 정도 늦어졌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1983년 9월 1일 새벽 발생한 KAL기 격추 사건 당시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을 오간 긴박한 상황 파악 노력도 담겨 있다. 사건 초기에는 연락이 두절된 여객기의 행방 등을 놓고 혼동이 있었지만 사건 발생 7∼8시간이 지난 뒤 우리 정부와 미국, 일본 내에서는 소련에 의한 격추설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소련은 KAL기를 격추시킨 소련 전투기 교신을 감청한 내용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공개된 9월 7일 이후에야 격추 사실을 시인했고, 영공 침해에 대한 정당한 조치였다고 강변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