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창연] 교정 잘못하면 곤장 맞고 파면
입력 2014-03-27 02:43 수정 2014-03-27 09:29
2011년 4월, 한국과 유럽연합의 FTA 협정문 한글본 내용 중 ‘공작 기계’를 ‘공자 기계’로, ‘광택제’를 ‘고아택제’로 표기하는 등 잘못된 곳이 207개나 발견돼 정부 체면이 깎인 적이 있었다. 그해 7월에는 EBS에서 발행된 수능 외국어 영역 교재에서 64군데나 교정이 잘못돼 책을 다시 인쇄한 일이 있었다.
개인끼리 주고받는 편지도 쓰다가 잘못되면 다시 고쳐서 보내는데 국가와 국가 간의 협정문에서,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을 상대로 펴내는 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사람(교정자)이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할 정도로 원고와 교정쇄를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정쇄를 뚫어질 정도로 살피면 작은 점 하나도 큰 바위같이 보인다. 둘째, 교정 전문가가 교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인쇄물 교정 직무를 태만히 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종 38년(1543년)에 발행된 법령집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 교정과 인쇄에 관한 벌칙 규정이 있다. 책 한 권에 글자 한 자가 틀리면 곤장 30대, 한 자 더 틀릴 때마다 한 대씩 더 때린다. 교정과 인쇄 담당 관리는 다섯 자 이상 틀리면 파직한다. 원고를 불러 주는 창준(唱準) 이하의 장인들은 잘못이 있으면 근무 일수 50일을 깎는다.
교정에 태만한 자들을 이 규정대로 처벌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선조 6년(1573년)에 발행된 여성 교양 책 ‘내훈(內訓)’과 조선의 관리와 명나라 사신 간의 이야기를 모은 책 ‘황화집(皇華集)’에 내용과 인쇄에 오류가 많아 선조는 ‘내훈’과 ‘황화집’ 인쇄 책임자들에게 곤장 90대를 때리고 파직했다.
또한 원고를 불러 주는 창준과 인쇄를 담당한 인출장(印出匠) 6명에게는 곤장 100대를 때리고 근무 일수 50일을 깎았다. 중앙 관서의 출판물에 대한 교정자의 소임이 얼마나 막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버릇, 습관, 양심, 행동, 신체 등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교정(矯正)이다. 그리고 글자, 사진, 그림, 색 또는 체재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교정(校正)이라 한다. 눈을 통해 마음에 각인돼야 할 정보가 종이라는 물질과 만나기 전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교정자 자신부터 먼저 교정(矯正)이 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교정자는 교정 전에 항상 자신의 몸부터 깨끗이 씻는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교정 미스로 잘못 보도된 기사가 나가면 완벽하게 바로잡아서 알려 주는 신문으로 유명하다. 1853년 1월 20일자 신문에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의 이름을 본문에는 ‘Northrop’으로, 제목에는 ‘Northrup’으로 잘못 보도된 사실을 161년 만에 바로잡아서 지난 4일자 신문에 정정 기사를 냈다.
날마다 새롭고 진귀한 정보가 펼쳐지는 세상이지만 교정 사고는 440년 전과 똑같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정에 무감한 자들에게 때리는 곤장이 없어졌을 뿐이다. 나라의 체면이 깎이고 정부를 대신하는 공기관에서 만든 책이 잘못되어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을 혼란스럽게 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도, 가슴에 와 닿는 사과문 한 장도 본 일이 없다.
사회가 때리지 않으면 교정자 자신이 ‘마음 곤장’을 때리고 맞으면서 교정 정신을 차려야 ‘大統領’을 ‘犬統領’으로 만들지 않는다.
금창연(동원대 교수·출판문화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