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체육계 ‘비정상의 정상화’
입력 2014-03-27 02:42
얼마 전 보도된 사례를 되짚어보자.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교 농구 결승전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경기종료 전 자폐아 선수가 코트로 들어섰다. 동료는 그에게 계속 패스를 건넸다. 슛은 빗나갔다. 이때 상대팀 감독이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이어 공을 잡은 상대팀 선수는 자폐아 선수를 자기편 코트로 불러 공을 건네며 슛을 던지라고 배려했다. 몇 번 실패하자 골밑까지 안내해 성공할 때까지 도와줬다. 마침내 골을 넣은 그 아이는 감격에 겨운 듯 동료들과 깊은 포옹을 했다. ‘참 스승’인 상대팀 감독이 만들어낸 감동의 드라마였다.
나흘 전 미국발 기사도 뇌리에 박혔다. 미국 뉴저지주의 한 고교 축구부 공격수인 호르헤 다익슨의 이야기다. 그는 생후 14개월 때 세균 감염 탓에 팔과 다리를 모두 잃었다. 그는 지금 보철 다리로 일반 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다. 공을 잘못 차서 보철 다리가 날아가기도 하지만 그를 놀리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 학교 코치는 “그의 존재로 다른 선수들이 더 열심히 훈련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 사례는 스포츠가 아이들에게 화합과 배려심을 심어주고, 아픈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교본처럼 느껴졌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불공정부터 배우는 아이들
주변에 야구선수를 꿈꿨던 초등학생이 있었다. 가벼운 자폐 증상이 있던 그 아이는 야구에 푹 빠졌다. 흥미를 느끼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기진맥진해 울면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그대로 소화해 냈다. 아이 아버지 말로는 또래 일반 아이들과 비교해도 타격과 투구에서 손색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야구를 그만뒀다. 부모는 야구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감독의 불성실과 오만, 동료 선수들의 놀림…. 부모 얘기를 들어보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그 아이에게 “아직도 야구가 좋니?”라고 물어보니 “계속 하고 싶은데, 그만둬야 해요”라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닫힌 듯했다.
일반 아이들도 운동하기 힘든 게 우리 처지인데 웬 자폐아 얘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애아들도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미국과 어려서부터 불공정과 싸워야 하는 우리 현실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심판의 고의적인 편파판정, ‘갑’ 행세를 하는 일부 감독과 경기단체들 탓에 아이들은 좌절감부터 느낀다.
요즘 체육계에 대대적인 감사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기단체 임원이나 협회장직을 업으로 삼아 권력을 누리거나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수십년간 고여온 경기단체는 당연히 손볼 때가 됐다.
잘못된 갑을 관계 바로잡아야
그러나 정말 고쳐야 할 관행은 아이들을 볼모로 이뤄진 체육계의 ‘갑을’ 관계가 아닐까. 아마추어 스포츠는 대부분 어린 선수들이 스포츠 정신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그런데 보조자인 심판이 주인 행세를 하고, 어린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은 직위를 이용한 범죄행위다. 오죽하면 태권도 편파판정에 억울해하던 선수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생기겠나. 그 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요즘 태권도계는 또다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불거진 오심판정으로 떠들썩하다. 대한농구협회 심판들은 경기 판정에 협회 인사들의 부당한 외압 행위가 있었다고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심판들과 경기단체 임원들의 뿌리 깊은 전횡이 근절되지 않으니 학생들은 ‘세상이 원래 이런 것’이라고 체념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심판과 감독, 경기단체가 ‘슈퍼갑’ 행세를 하며 경기결과를 조작하고, 아는 사람 챙겨주기를 반복하면 아이들은 불공정을 먼저 배운다. 이래서는 아마추어 스포츠도, 아이들도 설 땅이 없다.
노석철 체육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