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사람들’ 서예 부문 수상 심동철씨 “새벽기도 때 떠오른 영감 담아 글씨 씁니다”

입력 2014-03-27 02:33


지난달 ‘2014 한국을 빛낸 사람들’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서예 부문 수상자는 정식 서예 교육은 전혀 받아 본 적이 없는 김치업체 대표에게 돌아갔다.

전통적인 서예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었다. ‘道(길 도)’에는 ‘머리 수(首)’ 대신 발바닥을 그려 머리가 아닌 발이 그려져 있고, 絶(끊을 절)’ 위에는 붉은색과 파란색 띠를 붙여 글씨를 끊어버렸다.

이 작품들은 자신의 사업 경험담을 쓴 책인 ‘디지털 김치장수’로 유명한 심동철 춘천옥할매김치 대표의 신앙고백적 캘리그래피(디자인이 더해진 손 글씨)다. 26일 서울 신촌의 사무실에서 만난 심 대표는 “새벽기도를 하면서 떠오른 영감을 담아 글씨를 쓴다”고 말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망한 뒤 단돈 3만원을 가지고 김치판매업을 시작하면서 처음 붓을 들었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배추를 사서 소금에 절여놓고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어 글씨를 썼다.

빚 독촉에 시달리며 죽고만 싶은 심정을 이겨내기 위해 40일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심정을 담아 ‘生’을 쓰고 붉은 점을 찍었다. 심 대표는 “나와 이웃을 살리는 에너지를 담은 ‘서바이벌 생’자”라고 풀이했다.

싱싱한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고 버무려지고 발효돼야 김치로 만들어지듯 내가 죽어야만 다시 산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면서 글씨를 ‘발명’했다. ‘絶(끊을 절)’은 글씨를 잘라내 과거와의 단절을 표현했고, ‘曲(굽을 곡)’에는 난초를 그려 고난 속의 은혜를 담았다. 글씨를 쓰며 마음에 위로를 얻으면서 사업도 풀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주문을 도입해 3년 만에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그린’ 글씨를 모아 전도지를 만들었다. 주변에 소문이 나면서 잡지사에서 글씨를 싣고 싶다고 찾아오기까지 했다. 심 대표는 요즘 김치 사업과 함께 서예가이자 강연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역 앞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하는 단체인 ‘참좋은친구들’의 일도 돕고 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고통 속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고 살아야 할 목적을 발견했다”며 “신앙 위에 내 인생이 자리를 잡으면서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처럼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