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11) 김은주 추억을파는극장 대표

입력 2014-03-27 03:31


“실버영화관, 돈만 셈하면 필름 못걸어요”

지난 1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허리우드극장. 푸른색 재킷을 걸친 젊은 여성이 은발의 관객 앞으로 나섰다. 김은주(40) 추억을파는극장 대표다. 그는 경쾌하고 빠른 목소리로 어르신 300여명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주의사항을 전했다.

"곧 상영될 '파리의 아메리카인'은 뮤지컬 영화입니다. 유명배우 진 켈리가 나오죠. 자막이 커 어르신께서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안내를 마치자 한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그의 손등을 어루만진다. "이게 어르신들 소통방식이에요. 나갈 때도 손을 잡고 '영화 잘 봤다'고 해요. '우리 여사장 말 잘해' '오늘 참 예뻐'란 말씀도 하고요. 그래서 외모에도 꽤 신경 쓰게 돼요. 어르신들 기대가 높아서요(웃음)."

누군가 꼭 해야 할 '실버영화관', 셈하지 않았다

김 대표가 실버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영화 때문이다. 그는 2004년 을지로 스카라극장을 인수하면서 영화산업에 발을 들였다. 카드와 멤버십회사에서 일하며 극장 및 기업과 업무제휴를 한 게 계기가 됐다.

“한 대기업이 제게 투자할 테니 스카라극장을 인수하라고 권했습니다. 고객에게 관람권을 제공할 계획이니 고정적으로 상영관을 제공해 달라는 거죠. 전 이 기업 고객에게 영화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개별적으로도 영업을 했어요. 그 결과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지요.”

스카라극장의 성공을 바탕으로 김 대표는 2005년 충정로 드림시네마를 인수했다. ‘서대문아트홀’로 영화관 이름을 고친 그는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시사회 전용관’으로 바꿔 운영한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관에서 이룬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근대문화재로 등록 예고돼 재산가치 하락을 우려한 소유주가 자진철거하면서 스카라극장이 1년 만에 문을 닫아서다. 70년 역사의 영화관이 경제논리로 사라진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70세 이상 고령 직원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생각으로 2008년 허리우드극장을 인수했다. 김 대표는 개관 전 시장조사를 하다 두 가지 독특한 점을 발견했다. 극장 인근에 어르신 인구가 월등히 많으며 이들이 최신영화보다 고전명화를 좋아한다는 것. 그는 이번에도 모험을 택했다.

“어르신이 많은 이곳에서 멀티플렉스 극장처럼 운영할 순 없어요. 주 고객층을 어르신으로 삼고 고전명화를 올리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실버산업은 웬만해선 성공하기 힘들거든요. 실버영화관 여니까 다들 ‘또라이’라 하더군요. 필름값이 얼만데 관람표 2000원이 웬 말이냐고. 그래도 셈하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어르신 문화를 지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시련으로 다져진 신앙의 굳은살

2009년 김 대표는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극장에 국내 최초의 ‘실버영화관’을 열었다. 예상대로 ‘돈 안 되는 장사’였지만 손님은 계속 왔다. 개관 초기부터 매일 300∼400명의 어르신이 그의 극장을 찾았다. 입소문이 퍼져 강원도, 제주도 등 전국의 어르신들이 찾아오자 영화표 품귀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가격이 싼 만큼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란 인식을 불식하는데도 주의를 기울였다. 우선 자막과 좌석번호, 리플릿 글자 크기를 2배로 늘렸다. 극장 곳곳에 손전등을 든 자원봉사자를 배치해 자리를 안내하도록 했고 계단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손잡이를 설치했다.

어르신들의 뜨거운 호응과 달리 극장 운영은 계속 어려워졌다. 매달 2000만원의 적자가 쌓였다. 집과 자동차 등 가진 것을 다 팔고 카드 돌려 막기까지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1년 지자체 지원마저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2012년엔 관광호텔 건설을 이유로 서대문아트홀이 폐관됐다. 삭발까지 하며 저항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태신앙인 그는 기도원을 찾아 금식했다. 울부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고비마다 기도원에 갔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준 거라고 믿었어요. 극복할 수 있는 기도제목을 주는 데 감사하기로 결심했죠. 제 기도에 응답할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곤경 대신 기회를 주셨어요. 단단해진 신앙심과 함께요.”

이후 굴지의 기업과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극장은 숨통이 트였다. 관객도 꾸준히 늘어 누적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내년쯤엔 적자 늪을 탈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시련으로 단련된 신앙의 굳은살 덕분이라 고백했다.

“누적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면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낼 겁니다. 제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초청하는 거지요. 그래서 어르신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자 소비자로 인정받는 시대가 곧 온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로 실버영화관이 사용되길 기도합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김은주 대표

△1974년 출생 △2010년 서울대 최고지도자과정 이수 △2004년 스카라 극장 인수 및 즐거운시네마 법인 설립 △2008년 허리우드극장 인수 △2009년 허리우드 극장에 실버영화관 개관 △2009년 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장 수상 △2012년 실버·다문화극장인 안산명화극장 개관 △2013년 고령자친화기업 추억더하기 설립 △2013년 실버문화복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