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전성인] 규제완화 아니라 규제합리화라야

입력 2014-03-27 02:46


“규제 부과를 통해 기업은 불편해지지만 소비자가 혜택을 보는 경우도 많다”

요즘 국정의 화두는 규제완화다. 중국 사람들이 한류 열풍을 타고 천송이 코트를 구매하려고 해도 공인인증서가 없어서 구매를 못한다는 말은 ‘손톱 밑 가시’를 기가 막히게 대변하는 사례였다. 그래서 규제완화는 우리 경제의 중흥을 위해 꼭 필요한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좋다. 중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인터넷 거래에 짜증을 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액티브 X’ 없는 사이버 세상을 노래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은행 홈페이지나 국세청 연말정산 사이트에 접속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짜증나는 경험을 제대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규제완화 열풍이 열풍으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서서히 광풍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옥석을 가리지 않고 ‘홍수 난 김에 쓰레기 버리듯’ 소원수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 중에는 규제완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손톱 밑의 가시가 아니라 대궐의 대들보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뽑을 때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신중하게 뽑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도 실적에 몰리는 장관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한 건’을 올리기 위해 분주하다.

예를 들어 보자. 금융 분야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즉 규제가 산업의 본질이고 정부로부터 인가라는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기업은 아예 장사조차 못하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규제완화의 광풍이 불고 있다. 먼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례부터 보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금융위의 규제완화 리스트 중에는 ‘금융기업 보수와 관련한 금융사 자율성 강화’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금융사 임원이 성과와 무관하게 과다한 보수를 챙겨간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던 것이 언제인가? 언론이 때리면 규제하다가,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것이 규제완화란 말인가?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영국식 자산종합관리 계좌 제도의 도입’은 또 무엇인가. 물론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고, 도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규제완화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냥 업계의 소원수리 목록 중 하나일 뿐이다. 감독 당국이 제대로 된 곳이라면 새롭게 장사를 해 보고 싶다는 업계의 숙원과 이 과정에서 혹시 불완전 판매와 같이 금융소비자에 대한 보호가 소홀해질 가능성은 없는지를 신중하게 비교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대들보를 뽑자고 덤벼드는 것도 있다. ‘금융권 간 칸막이를 없애고’는 또 무엇인가? 이것은 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로 옮겨가자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정책적 선택은 단순히 규제완화 차원에서 가볍게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전업주의를 근간으로 규제체계를 구축해 왔고, 겸업이 필요할 경우에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형태로 추진하라는 정책적 합의를 유지해 왔다. 물론 이런 합의를 재검토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수반해야 한다.

규제완화가 능사가 아니다.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를 가려서 도입할 것은 도입하고,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폐지할 것은 폐지하는 규제 합리화가 중요하다. 규제는 상대방이 있는 경기에서의 규칙이다. 규제 부과를 통해 기업은 불편해지지만, 그런 규제를 통해 소비자가 혜택을 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목소리와 소비자의 목소리를 모두 경청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아마 대다수의 부처가 기업의 목소리만을 듣고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금융규제의 경우 금융위원장이 소비자 단체 대표들을 초청해서 규제 합리화와 관련한 의견을 경청했다는 보도는 접한 적이 없다. 그저 금융사 대표나 협회 대표들을 모아 놓고 소원수리 리스트를 내라고 했다는 보도만 있을 뿐이다.

천송이 코트를 사지 못해서 짜증을 낸 쪽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였다. 대통령이 말하는 규제완화는 아마도 이런 것을 시정하라는 것일 것이다. 정부는 지금 누구 말을 듣고 있는가.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