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융통성의 득실

입력 2014-03-27 02:46

국제관계에서는 지혜로워도 어리석은 듯이 굴고, 실제로는 용감하지만 겁먹은 듯이 굴고, 많이 알더라도 조금밖에 모른 체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이런 자세를 공자는 지만계영(持滿戒盈)이라고 불렀다. 가득 찬 상태를 유지하려면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에 따르면 물을 받아 묵직해지면 기울었던 그릇이 서고, 물이 가득 차면 뒤집어지는 이 그릇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계영배와 비슷한 구조로 보인다.

독일제국 탄생의 주역 비스마르크는 전쟁도 불사하는 강경책과 섬세하고 지능적인 외교정책을 함께 펼친 이 방면의 대가로 통한다. 독일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보불전쟁(普佛戰爭)의 비사는 외교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다. 유명한 엠스전보(電報)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표면상으로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먼저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는 비스마르크의 작전이었다.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엠스에서 만난 프랑스 대사와 프로이센 왕의 회담결과를 사실과 반대로 알려 두 나라 국민들을 격앙시킨 뒤 어리석은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를 하게 만든 것이다. 결과는 전쟁을 철저히 준비했던 프로이센의 완승. 비스마르크는 공자의 말을 충실히 이행한 셈이다.

우리 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개회식에서 당당하게 기조연설을 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자주적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문전박대 당했던 바로 그곳에서 정상외교를 벌였기 때문이다. 국력신장의 단적인 증거다.

최근 국내정치 사정과는 달리 중국 미국과의 관계는 비교적 잘 풀리는 듯하다. 그렇지만 세상에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 국가의 마음이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돌변한다.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빼앗긴 우크라이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국제 고아(孤兒)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사실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를 일컫는 융통성은 선비가 취할 자세는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결백성과 도덕성으로 무장해도 주위에 벗이 모여들지 않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개인은 몰라도 국가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융통성은 좋게 말하면 유연성이고 살아남는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