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73)] 증인의 자격
입력 2014-03-26 14:05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까지 선교를 ‘하라는’ 것으로만 여겨 전도와 선교만 생각해 왔다.
언젠가 강남대로변에서 자동차에 확성기를 단 채 큰 소리로 “예수 천당”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무척 시끄러워 듣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 어떤 날엔 이상한 옷을 입고 ‘예수=천당’이라 적힌 어깨띠를 두른 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전하는 분도 보았다. 전도지를 받는 사람은 적었고 오히려 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하철에도 전도하시는 분을 가끔 만난다. 옷이 매우 누추해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분들이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옷차림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일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느 회사의 사장님이 매주 1회씩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증거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 사장님이 월급 문제로 직원들로부터 신망을 잃었고, 인격적으로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분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교회에 출석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의문”이라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쟁 중인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자신의 결백을 계속 이야기하는데 “말씀의 앞뒤가 맞지 않아 그 설교 시간이 너무 힘이 들었다”는 어느 집사님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예수님의 증인은 말과 행동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천국의 문을 막고 자신도 못 들어간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됨은 올바른 말과 신뢰 가는 인격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그 증인의 말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다.
증인이 거짓말을 하고 믿지 못할 인격을 지닌 채 예수님을 증언하면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일이 아닌지, 또 증인 된 설교자가 망령되고 헛된 말로 나쁜 목적을 가진 설교를 한다면 듣는 자들로 하여금 유익이 적을 뿐더러 도리어 듣는 자를 망하게 하지 않나 여겨진다.
수많은 신도들이 이 때문에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이 된다면 하나님께 그 책망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 나 자신도 이에 해당되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 반성해 보니 부끄럽기만 하다.
큰 교회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다. 그리고 귀하게 쓰이는 것도 천하게 쓰이는 것도 있다. 모두 다 금 그릇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탤런트가 작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되어 주인의 쓰임을 받는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있고, 또한 악한 자들도 있다.
교인이라고 모두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들과 서로 논쟁하지 말 것을 권한다. 여기에서 다툼이 생기고 분쟁이 생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께 사로잡혀 선한 일에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증인은 본인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신뢰받는 인격과 거짓 없는 말을 갖춰야 한다. 부끄러울 것 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전도를 하기 전에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는가를 반성해야 하며, 그 다음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전도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전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증인으로서 자격을 갖추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하나님 저를 당당한 증인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가 오늘의 기도 제목이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