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돈 뜯는 어린이집… 부모는 봉

입력 2014-03-26 02:06


서울 동작구에 사는 학부모 A씨는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받은 원비 고지서를 보고 황당했다. 생후 15개월 된 아이의 어린이집 비용으로 정부지원금 34만7000원 외에 학부모가 내야 하는 49만5000원이 추가로 부과돼 있었다. 그중 A씨를 가장 당황케 한 건 영어, 오르프(악기의 일종), 성장체육, 리더십 교육 명목의 ‘특별활동비’ 12만원. A씨는 25일 “걸음마를 갓 뗀 아이에게 영어는 물론이고 리더십 교육을 어떻게 시킨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맞벌이 부부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도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의욕적으로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일부 어린이집이 특별활동비나 위생용품·문구비 등을 불법적으로 과다 청구해 무상보육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무상보육 실시 후 서울시 보육예산이 2009년 대비 약 180%(2012년)나 증가했지만 ‘배(정부지원금)보다 더 큰 배꼽(학부모부담금)’ 때문에 학부모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낮다.

학부모들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꼽는 비용은 특별활동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닌 외부 강사가 영어 미술 음악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비용이다. 이달 초부터 시행되고 있는 영유아보육법시행규칙 제30조 2항(특별활동)에 따르면 24개월 미만의 영·유아에게 특별활동을 실시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는 건 불법이다.

복지부 보육정책과 관계자는 “18∼24개월 영·유아 중 보호자가 특별활동 실시를 먼저 요청하는 등 몇몇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24개월 미만 영·유아를 상대로 한 모든 특별활동은 불법”이라며 “이를 지키지 않는 어린이집에는 1차적으로 시정명령을 하고 그래도 안 지키면 15일∼1년간 운영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데다 혹시 자녀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일부 학부모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 어린이집의 과다한 특별활동비와 관련해 ‘어린이집 부당이익 및 불법 실태 조사 관련법 제정 촉구 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학부모 B씨는 “비품비 간식비 난방비는 모두 정부지원금에 포함되는 걸로 아는데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내고 있다”며 “정부가 좀더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출산육아담당관 현장점검팀 담당자는 “현재 서울의 어린이집은 모두 7000개로 구마다 300개쯤 있다”며 “1∼3명에 불과한 구청 담당자들이 모두 단속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인력 문제는 물론 수사권이 없어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 까닭에 어린이집 업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법령 정비와 함께 단속에 관한 규칙도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