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살라미 전술

입력 2014-03-26 02:55

북한이 대외 협상에서 사용하는 살라미(salalmi) 전술은 소금에 절여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식 소시지 살라미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의 카드를 여러 개로 세분화해 쟁점화한 뒤 하나씩 수용하면서 보상을 받아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법이다.

실제 북한은 6자회담이나 미국과의 협의에서 핵 카드를 여러 개로 쪼갰다. 예를 들어 핵무기나 핵실험장 얘기는 꺼내지도 않은 채 영변 핵시설에만 논의를 국한했다. 그것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시설 폐쇄 등으로 나눠 마지못해 받아주는 체하면서 이중, 삼중의 이득을 챙겼다. 그리곤 협상이 마무리될 즈음 새로운 카드로 상대의 뒤통수를 치면서 돈을 들고 테이블로 다시 나오라고 억지를 부렸다. 남북 관계에서 점진적으로 긴장을 높인 뒤 불쑥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방법도 살라미 전술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약발은 떨어졌다. 북한과 마주 앉았던 국가들이 살라미 전술이 기만이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구동성으로 북한에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북한에 더 이상 줄 것이 없으며,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준수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언행을 보노라면 이미 약효가 다한 살라미 전술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난해 말 취임 이후 줄곧 일제(日帝) 침략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보를 보이더니 최근엔 발을 빼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소원해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 들러 “역사적 사실에 겸허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으로 세계 평화를 실현하고 싶다”고 말한 것도 그 사례다. 일본 역사 교과서를 개악하고, 침략의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는 등의 망언을 쏟아낸 아베 총리가 맞는가 싶을 정도다.

그의 변신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진정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일제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도, 머리 숙이지도 않고 있다. 주변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반응을 살펴가며 수위를 조절하려는 것 같다. 안타깝다. 꼼수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진솔하게 과거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