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軍에선 “같이 잘까”가 농담?… 자살 女대위 가해자 ‘집유’ 관련 軍해명에 논란 증폭
입력 2014-03-26 02:40
[친절한 쿡기자] 여성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직장 상사인 남성이 “같이 잘까?”라고 말했습니다. 어떤가요. 지위를 이용한 성관계 요구 같습니까, 아니면 정도가 심해도 농담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대한민국 군검찰 기준대로라면 ‘농담’입니다.
지난 24일 김흥석 육군 법무실장이 국방부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군사법원 판결을 해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일 육군 2군단 군사보통법원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모 부대 소속 여군 A대위 자살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B소령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B소령의 성적모욕, 강제추행, 가혹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추행 정도가 가볍고 초범인 점을 감안했다”며 집행유예를 판결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기자실을 방문한 김 실장은 “‘소설 같은’ 기사가 나가고 있다”며 “유서, 일기를 봐도 성관계 요구는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B소령의 공소장에는 “2013년 7월 12일 시간불상경 사무실에서 공연히 피해자에게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냐? 같이 자야지 아냐? 같이 잘까?’라고 말하며 모욕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A대위는 이날 일기에 ‘농담이라도 나랑 잘래? 이건 심하지 않은가’라고 적었습니다. 김 실장은 피해자도 농담이라고 표현한 것을 들어 성관계 요구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판단은 성적 굴욕감을 주는 행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와 거리가 멉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발간 성희롱 예방지침서에 따르면 성적 의도가 없었더라도 상대방이 굴욕감을 느끼면 성희롱입니다. 만일 군검찰이 ‘성적 굴욕감을 주긴 했지만 성관계 요구는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를 들이댄다면 그저 실소가 나올 뿐입니다.
네티즌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같이 잘까’라는 심한 농담이 유행하겠軍” “‘같이 잘까’가 성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여성들은 ‘손만 잡고 잘게’라는 말을 100% 믿어야 한다” “당신들의 어머니, 딸, 아내 얼굴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게 대한민국 육군의 성의식”이라는 등 냉소와 비난 일색입니다. 고려할 가치가 없는 음담패설 성격의 악성댓글을 빼놓고는 김 실장의 견해에 동의하는 의견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육군은 “가해자를 비호할 의도는 없다. 군검찰도 항소할 것”이라며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것이지 ‘제식구 감싸기’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김 실장이 가해자의 변호인처럼 발언한 것을 본 사람들이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