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청년 놀리는 국가엔 미래 없다

입력 2014-03-26 02:56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에는 엄동설한에 병자호란을 겪는 산성마을의 처절함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왕과 세자를 옹위하고 후궁과 상궁나인, 문무대신 및 군졸과 군마가 몰려들었다. 먹고 자는 것부터 살아가는 모든 일이 전쟁이었다.

말먹이가 문제였다. 성 바깥 언덕배기에 남아있던 마른 잡초를 베러 나간 군졸들이 청군의 조총세례를 받고 성안으로 몸을 피한 직후 청군이 불을 놓아 풀을 모두 태워버렸다. 조금 남은 말먹이 마초더미도 마른 장작을 구하지 못한 군졸이 죽 끓이는데 몰래 꺼내 썼다. 초가지붕을 헐어 지푸라기를 끌어내렸으나 말이 먹기 전에 군졸이 깔고 잘 가마니와 우선순위를 다퉈야 했다.

군졸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진으로 허기를 달랬지만 말은 속수무책이었다. 굶어 죽은 말은 가마솥에 넣고 끓여 나눠먹었다. 군마가 몰살했으니 더 싸울 방도가 없었고 결국 삼전도에서 왕이 무릎 꿇고 항복하는 굴욕으로 마감했다.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면 억울한 대접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선거철이면 더욱 그렇다. 여야 모두 노년층 표를 의식해 기초연금 지연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에 혈안이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 공약 부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청년들의 무조건적 고정표 성향이 자초한 ‘말 취급’ 때문에 청년이 죽게 생겼다.

청년실업 책임을 청년층에 돌리는 경향도 있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몰려오는데 청년은 뭐하냐는 추궁이다. 구인난을 호소한다는 공장에 찾아가 열악한 작업환경과 급여수준을 살펴본 다음 따질 일이다. 기업주들도 자기 자녀를 그 조건으로 그곳에 취직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직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책임을 묻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은 기성세대가 만든 교육제도의 희생자이지 책임질 주체가 아니다.

과거 정부 시절 무슨 이권처럼 너나없이 대학설립에 몰려들었다. 칠판과 분필만 있으면 굴러가는 인문사회계가 인기였다. 정원을 틀어쥔 교육부 지침에 맞춰 교수도 늘렸다. 고교 졸업생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정원 채우기 힘들어지자 학과통폐합 등 구조조정에 나섰으나 뽑아놓은 교수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학교법인 이사장 비리가 사방에서 폭로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을 적정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산업수요와 직접 연계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활성화하고 산업현장의 도제교육을 독일처럼 정착시켜야 한다. 국정과제에서 청년고용의 우선순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해외건설 현장에도 청년을 진출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 작업환경 개선과 청년 해외진출 지원을 위해 국가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생애 첫 직장인 청년 급여에 대해서는 법인세 손금인정비율을 높여야 한다. 청년창업에 대한 원스톱 지원체계도 정비해야 한다.

근속연수에 따른 과도한 호봉상승도 억제해야 한다. 30년 근속자의 평균급여는 우리나라의 경우 초임의 3.3배로서 독일의 2배, 프랑스의 1.3배에 비하면 엄청난 격차다. 청년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취직에 성공해도 불평등한 임금장벽에 부딪힌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조직력으로 구축된 근속연수 호봉제가 청년을 또 한 번 울리는 것이다. 청년의 실업과 저임금 사태로 결혼연령은 갈수록 늦어지고 출산율은 1.18명까지 떨어졌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상태가 10년간 지속되고 있다.

청년고용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성장동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존립기반 자체가 무너진다. 남한산성에서 군마를 굶겨 죽여 전투력을 잃고 항복했던 낭패가 청년을 놀게 만듦으로써 재연될 판국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청년 일자리 문제가 선거판 핵심쟁점이 돼야 한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