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겸손과 희생으로 생명의 신비를 본다

입력 2014-03-26 02:17


얼마 전 어느 산골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잘 차려진 점심 밥상에 겨우내 얼어붙은 땅에서 살아남은, 잎이 거친 배추쌈이 올라왔다. 지인이 직접 재배했다는 배추쌈은 봄나물 특유의 상큼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인은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봄나물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재배한 배추가 눈밭에서도 얼어 죽지 않은 것은 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겨울을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기 좋고 속이 튼실하게 포기를 안은 배추는 모두 얼어 죽었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지 않았으나 나무나 식물의 이름을 거의 모른다. 이름을 아는 봄나물은 냉이, 고들빼기, 질경이(질창구), 민들레 정도다. 그런데 이 식물들은 모두 지인의 말처럼 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겨울을 나는 것들이다. 긴 겨울이 다 지나도록 자신의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지만 이른 봄에 가장 먼저 생명의 기운을 전달하다.

나는 인터넷으로 ‘봄나물 이름의 의미’라는 글을 읽으면서 냉이의 생존방법에 크게 공감했다. 봄나물의 대표 격인 냉이가 두해살이 식물인 것도 처음 알았다. 냉이가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 비결은 잎에 있었다. 냉이는 뿌리 주변의 잎과 줄기에서 나는 잎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뿌리 주변에서 나는 잎은 땅에 바짝 달라붙어 식물체를 추위로부터 보호한다. 지인이 들려주었던 봄나물의 겨우살이 방법과 같다.

종류만 해도 몇 십 가지일 정도로 흔하디 흔한 냉이는 교훈을 주는 나물이었다. 냉이를 영문이름으로 ‘mother’s heart(어머니 마음)’라고 하는데 추운 겨울을 나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뿌리 주변을 감싸는 잎의 모습이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과 닮았기 때문이다. 냉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마음’을 읽어낸 사람들의 생각이 훌륭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냉이는 모성을 가진 봄나물이라 해도 될 만큼 친근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른 봄이 되면 우리의 아낙들과 어린 누이들이 냉이를 캐어 식탁에 향기와 풍성함을 더한 것 같다. 들판에서 자라는 보잘 것 없는 식물도 생명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나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생명의 원리를 설명해준 지인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봄나물의 생존방법에는 자신의 몸을 한없이 낮춰 땅에 붙을 정도의 겸손함이 있었다. 그리고 뿌리를 보호하는 잎처럼 모성을 느낄 만큼의 희생이 있었다. 이 땅을 터전으로 삼은 생명은 어느 것이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봄나물은 사순절기를 보내는 기독교인들에게 겸손과 희생의 영성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봄나물을 맛으로만 말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겸손과 희생으로 생명의 귀중함과 신비를 교훈하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을 이겨낸 힘은 겸손과 희생이라는 뜻밖의 해석을 하면서 새봄의 의미를 찾아본다.

<여주 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