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 무턱대고 완화하기보다 합리화 추구를

입력 2014-03-26 02:51

양면성·역사성 고려하고 중장기적 득실 따져야

대한민국 정부가 규제개혁의 기치 아래 ‘돌격 앞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규제의 성격과 존재 의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그것의 합리화를 위한 이성적 논의는 오간 데 없다. 결국 옥석을 구분하지 않은 채 건수 위주의 민원해결식 규제완화 속도전으로 흐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번 규제개혁이 과거 정부와 같은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규제개혁 대상 선정의 정교한 원칙, 규제영향과 혜택·비용에 대한 정교한 분석, 그리고 이런 논의구조의 투명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규제의 양면성을 지적하면서 “복지와 환경, 개인정보보호와 같이 꼭 필요한 규제들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부처별로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해서…규제 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와 기업인들이 주로 참석한 공개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는 거의 규제완화 일색이었다.

다음날부터 각 부처는 한 목소리로 규제완화를 강조했다. 현오석 부총리는 와중에 “입지, 환경, 노동 등 기업 활동 관련 핵심규제를 고쳐 나가겠다”면서 화살을 다른 규제부처들로 돌렸다. 자기 부처 규제는 로맨스요, 남의 부처 규제는 불륜이라는 발상이다. 그러나 정작 환경과 노동3법은 모두발언에서 필요한 규제로 분류됐다. 어떤 규제를 중점적으로 없애고, 풀어야 하는지 방향성이 모호하니까 각론에서는 부처마다 중구난방이다.

모든 규제는 역사적 배경과 공적 명분을 갖고 태어난다. 규제에는 혜택과 비용이 따르고, 찬성과 반대그룹이 있다. 국가 전체로 봤을 때 규제에 따른 득과 실도 단기적, 중장기적 차원이 전혀 다를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자주 지적하지만, 지리·역사·문화적으로 그 나라에만 독특한 문제가 있고, 그에 대해 나름대로의 규제가 존재이유를 가질 수 있다. 수도권 인구집중·입지 규제도 세계에 한국만큼 수도권 집중이 심한 나라가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부 유럽 국가들은 문화유산과 전통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도심 도로를 확장할 수 없고, 지붕 색깔을 통일해야 한다.

당장 20일 공개토론회에서 나온 규제개혁 대상 가운데서도 학교 주변 호텔건립 허가문제, 인터넷게임 ‘셧다운제’ 등은 상충하는 가치들 간에 경중을 쉽게 가릴 문제가 아니다. 그 밖에 규제완화 대상으로 최근 거론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백두대간 등 고지대 풍력발전 입지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등도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이다.

현행 규제 가운데서도 안전과 보건, 사회적 약자 보호, 지속가능성의 확보, 공정거래와 균형발전 등을 위한 규제는 더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 즉 경우에 따라 처벌을 강화하는 대신 자질구레한 규정들을 통폐합해 단순화하는 것이다. 반면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 특정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관료들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그들의 이익을 꾀하는 규제들은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