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기웅]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입력 2014-03-26 02:35
나는 지금 라이프치히에서 이 글을 쓴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공익법인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는 매년 3월 열리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에 참가해 한국관을 운영하는데, 나흘간의 일정을 이제 막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일은 책과 문헌을 통해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알린다는 취지로 기획돼 정부 및 관련 기관의 협조와 후원으로 성사됐다. ‘한글’을 주제로 하여 처음 참가한 작년에 이어 올해는 우리의 전통음식문화인 ‘한식(韓食)’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알렸다.
도서전 개막을 하루 앞둔 날, 아름다운 콘서트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전야제는 참으로 인상 깊었다. 성 토마스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축하 연주가 곁들여진 이 행사에서는 융 라이프치히 시장과 리트뮐러 독일출판협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틸리히 작센주 총리와 올해의 주빈국인 스위스 연방정부 베르제 장관의 축사가 있었다. 매년 세계 출판계에 공로가 큰 출판인에게 수여하는 라이프치히 도서상은 인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판카지 미슈라에게 돌아갔다.
문화예술적 전통이 숨쉬는 도시
우리가 라이프치히에 주목한 것은 이 도시가 지닌 오랜 문화예술적 전통과 그에 부응하는 도서전의 성격 때문이었다. 라이프치히가 어떤 도시인가.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가 평생 사제로 살기를 맹세하는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하고 성직자 요한 에크와 격렬한 면죄부 논쟁을 벌였던 ‘종교도시’, 만년의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28년간 성가대를 지휘했고, 바그너의 고향이며, 멘델스존과 슈만이 음악학교를 설립한 ‘음악도시’, 법학도 괴테가 ‘파우스트’를 구상하고 청년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책을 통해 세계와 자아를 마주했던 ‘문학도시’, 이곳이 바로 라이프치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는 드레스덴은 구 동독지역으로 라이프치히와 바로 이웃해 있다. 통일 이후 두 도시는 폐허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급성장을 이루면서 역사의 영광을 되찾은 도시로 함께 각광을 받고 있다.
라이프치히는 유서 깊은 인쇄·출판의 도시로도 명성이 높다. 근대 독일과 유럽 문화의 발전에서 인쇄술과 제지술의 발달, 번역과 출판의 역할은 그야말로 지대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흐름이 모두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 출판물의 절반 이상이 이 도시에서 발행됐을 정도다.
500여년의 역사를 지니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라이프치히는 책을 읽는다(Leipzig liest)’라는 기치 아래 박람회장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의 장이다. 극장 카페 식당은 작가들의 낭독회나 독자들과의 만남으로 밤새 불을 밝히고, 술집과 광장에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올해 역시 이 도시의 400여곳에서 3000명의 저자와 출판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3000여 행사가 치러졌으니, 그야말로 책을 매개로 한 문화예술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 문화 소개할 최적의 장소
나흘간 하루 평균 500여명, 연인원 3000명이 한국관을 찾았다. 관람객들은 우리가 준비해 간 한국 전통 다과를 맛보면서, 전통 상차림, 음식 관련 이미지와 영상물, 200여종의 한국음식 관계 도서들을 보면서, ‘한류’ 열기가 그렇듯 ‘한식’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또 국내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재단과 학술단체, 출판사 등에서 발행한 고품격의 한국문화 관계 도서 1000종을 선보임으로써 우리 문화를 다각적으로 홍보했다.
라이프치히 도서전 한국관 운영은 2023년까지 10개년 사업으로 준비되고 있다. 내년에는 ‘한복(韓服)’이, 그 다음 해에는 ‘한옥(韓屋)’이 주제인데 이리 되면 우리가 쓰는 말과 의식주 등 네 테마를 다루게 됨으로써 우리 문화가 밖으로는 조리 있게 소개되고, 안으로는 차분히 정리될 것이다. 우리가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