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26일] 져 주는 맛도 좋습니다.

입력 2014-03-26 02:25


찬송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304장 (통 40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16절


말씀 : 아이를 기르면서 종종 레슬링이나 권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져주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쉽게 이기는 승리감을 주는 것보다 지더라도 근성을 길러 줘야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 날은 레슬링을 하면서 조르기로 항복을 받아냈는데, 아이가 서럽게 엉엉 울었습니다. 왜 우느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힘도 세고 키도 크고 나이도 많은데 자기가 어떻게 이기느냐고 웁니다. 어떻게 한 번을 져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다음번에는 레슬링을 하면서 일부러 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의기양양하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야 레슬링 할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방부제 역할을 해서 생선이나 고기가 상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한 행실을 소금에 비유하신 것은 소금의 맛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소금 가운데 맛을 잃은 소금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바다에서 소금을 얻지 않고 바위에서 소금을 캤습니다. ‘소금바위’라고 할 수 있는 암염은 지각 활동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물에 염분이 씻겨 짠 맛은 없어지고 바위만 남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맛을 잃은 소금은 그냥 바위여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소금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져 주는 것입니다. 지는 것과 져 주는 것은 다릅니다. 지는 것은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져 주는 것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지만 봐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긴 걸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져 주신 것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져 주시는 것,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자격이 없는데 받게 하시고, 누릴 수 없는데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욥기 6장 6절에 보면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라고 합니다. 기원전에도 계란 흰자에 소금을 뿌려 먹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소금을 필요로 합니다. 소금 맛을 원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녹아야 맛을 내는 것처럼 자신을 녹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며, 이길 수 있지만 져줄 때에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의 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맛을 내는 삶을 15절에서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녹아지는 소금의 맛으로 가정이 세워지고, 사회가 변하고 직장이 새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좋으신 하나님,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병훈 목사(상계광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