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증거위조 수사] 검찰 vs 국정원 ‘권력의 충돌’
입력 2014-03-25 03:48
간첩사건 증거위조 수사로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오랜 ‘동지적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두 기관은 수사 내용과 방향을 놓고 서로를 향해 불신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초법적인 정보수집 활동과 법적 판단영역 간 충돌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권모(52) 과장이 검찰 조사에 불만을 드러내며 자살을 기도한 것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 과장은 지난 22일 오후 1시33분쯤 경기도 하남시의 한 중학교 앞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차량 조수석 바닥에는 철제 냄비 위에 재만 남은 번개탄 1개가 놓여 있었다. 권 과장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로 후송됐다. 병원 측은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증거위조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자살 기도는 국정원 협조자 김모(61·구속)씨에 이어 두 번째다. 권 과장은 지난 19∼21일 사흘 연속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를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핵심 인물로 지목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권 과장은 21일 검사와 격한 언쟁을 벌이다 조사 도중인 오후 3시쯤 조사실을 나와 버렸다. 그는 동료들에게 “검찰이 국정원 조직을 위조·날조의 공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남북 간의 치열한 정보전쟁에서 우리가 졌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과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검찰과 국정원의 갈등 양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간 수세였던 국정원은 격앙했고, 검찰은 당황했다. 대공수사 분야에 있어 두 기관은 과거 수십년간 한 배를 탄 사이였다. 국정원이 장기간 첩보 수집과 내사를 한 뒤 통신감청 등 강제수사가 필요한 단계가 되면 검찰과 수사 방향 등을 협의하는 게 통상의 간첩 수사 방식이었다. 검찰로서는 특히 해외 정보 수집의 경우 국정원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그런데 증거조작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런 시스템의 맹점이 노출됐다.
이에 국정원 측에서는 “머리(검찰)가 현장에서 뛴 손·발(국정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검찰 수사가 국정원의 비밀활동 영역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팽배했다. 반면 검찰은 “정보활동과 수사 증거 수집을 구분 못하고 구시대 방식으로 일처리를 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검찰 수사팀은 24일 권 과장의 자살 기도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 대공수사요원들의 헌신과 희생을 존중하며 이를 과소평가하거나 훼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향후 검찰과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야 할지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