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독의 對동독 지원 루트는 교회
분단시절 서독 교회는 동독 지원과 교류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서독 교회는 루터파, 칼뱅파 등 각 종파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하나(Eins in Christus)’라는 일념으로 하나가 돼 대동독 지원에 전방위로 나섰다. 각 종파가 하나 돼 동독 형제들의 아픔에 동참한 서독 교회의 모습은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교회도 서독 교회처럼 분단과 이념을 극복하는 화해자로서 통일의 길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독 교회는 분단 직후였던 1950년대부터 사회봉사적인 차원에서 동독 교회를 지원했다. 서독 교회는 통일 직전까지 끊임없이 동독 교회뿐 아니라 동독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양로원, 요양원 등 사회봉사 기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통일부가 독일 연방 하원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서독은 1990년 통일될 때까지 총 1044억5000만 마르크(2001년 기준 약 62조7000억원)의 현금과 물자를 동독에 제공했다. 이 중 서독 정부는 296억5000만 마르크(약 17조8000억원), 민간은 이보다 훨씬 많은 748억 마르크(약 44조9000억원)를 지원했다. 민간 지원 대부분이 서독 교회의 지원금과 서독 교인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것을 감안하면 전체 대동독 지원 액 중 무려 72%가 교회에서 이뤄진 셈이다.
서독 교회가 동독 교회에 지원하는 품목들도 다양했다. 생필품뿐 아니라 의류, 냉장고, 건축자재, 의약품, 서독의 현대식 의료기기 등도 지원했다. 심지어 원유, 구리, 천연고무, 커피, 양모 등과 같은 원자재까지 지원품에 포함됐다. 다만 서독 교회는 정부와 달리 동독 정권에 의해 전용될 수 있는 현금은 절대로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유지했다.
동독 정권이 1968년 헌법을 개정하며 교회의 유일한 재정 수단인 교회세를 폐지하고 교인들에게 보험과 연금제도까지 박탈했을 때에도 서독 교회가 나섰다. 동독 교회 건축 비용과 건물 보수 비용은 서독 교회의 몫이었다. 동독 교회 목사들의 월급 절반도 서독 교회가 부담했다.
이 같은 서독 교회의 노력은 각 종파의 결집과 동독 교회와의 유대감 때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교회는 나치 협력 문제로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1945년 슈투트가르트 고백을 통해 이를 사죄했고, 결국 1948년 독일교회협의회(EKD)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각 종파가 독립성을 유지한 연합체였다. 분단 이후에도 동서독 교회는 이 조직에 함께 속하며 동질감을 유지했다. 특히 서독 교회는 일부 친정부적인 동독 교회와도 똑같은 조건에서 교류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정신을 실천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49년부터 2년마다 동독 지역에서 열린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였다. 1954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교회의 날에는 무려 65만명이 참석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며 동서독 주민들 간 광범위한 접촉과 만남이 이뤄졌다. 비록 다른 체제 속에 살고 있지만 동서독 교회는 이 행사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토론했다. 서독 교회는 1년 예산의 40% 이상을 동독 교회에 쏟아 부었다. 독일 전문가인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은 24일 “동서독 교회는 동독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전혀 다른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인식시켜줬다”며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킨 것은 그런 가치관과 세계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서독 교회는 동독의 모든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서독 교회는 동독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때 물품과 돈이 용도에 맞게 제대로 사용됐는지에 대해 한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주님 안에서 교회는 하나라는 믿음과 동독 교회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서독 정부의 장려도 동서독 교회 교류의 큰 힘이 됐다. 서독 정부는 독일 내에 있는 비정부기구(NGO) 중 가장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는 교회의 교류에 주목했다. 서독 정부는 기독교민주당(CDU)과 사회민주당(SPD)으로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동서독 교회 간 교류를 인도적 사안으로 판단해 이를 막지 않았고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독일 통일, 교회를 통하다 2] 교파 떠나 형제 아픔 동참… 40여년 민간지원 대부분 차지
입력 2014-03-25 02:13 수정 2014-03-25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