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교회를 통하다 2] 디아코니 실무 프라이카우프 정치범 석방·이산 상봉 가교

입력 2014-03-25 03:01

지원 주체와 지원 방식은

서독 교회는 동독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특히 민감한 사안인 정치범 석방과 이산가족 상봉에 가교 역할을 했다. 바로 프라이카우프(Freikauf)였다.

프라이카우프는 1962년 서독 교회가 트럭 3대분의 칼리비료와 옥수수, 석탄 등을 동독에 공급하고 구금돼 있던 150여명의 동독 교회 관계자들을 석방시키면서 본격화됐다. 서독 교회는 이듬해인 1963년부터 정부와 손잡고 국가적 차원에서 프라이카우프를 실시했다. 서독 정부는 내독관계성 차관을 실무 책임자로 해 교회를 지원했다.

이에 따라 1963년부터 통일 직전인 1989년까지 28년간 서독 교회는 무려 3만3755명의 정치범을 데려왔고, 25만명의 이산가족을 상봉시켰다. 사용된 금액은 17억3000만 달러(당시 약 1조8400억원)였다. 프라이카우프를 시작할 당시 동독에는 약 1만2000명의 정치범이 투옥돼 있었지만 통일 직전에는 그 수가 2000∼2500명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납북자 및 국군포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라이카우프를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프라이카우프가 서독 교회라는 민간단체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추진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4일 “북한은 납북자와 국군포로가 없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프라이카우프를 한다면 민간단체 등을 통해 비공식적인 접촉에 나서는 게 좋다”고 말했다.

프라이카우프의 실무는 디아코니(Diakonie)가 담당했다. 디아코니는 석방될 정치범의 수와 물품이 확정되면 서독 내 5개 회사에 위탁해 동독이 원하는 물자를 국제시장 가격으로 구매해 동독에 공급했다.

독일 교회의 디아코니 역사는 1848년 요한 힌리히 비헤른 목사가 당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함부르크에 복지시설 ‘라우에 하우스’를 설립해 빈민, 실업자, 고아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게 시초다.

현재 독일 내에 있는 디아코니 기관은 3만1000여개, 직원만 45만여명이나 된다. 직원들은 자원봉사자 40만명과 함께 하루 100만명 이상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독일 복지를 지탱하고 있다. 독일에서 디아코니 활동을 위한 비용은 종교재단의 주 재원인 교회세에서 나온다.

프라이카우프·디아코니

Freikauf=독일어 자유(Freiheit)와 사다(kaufen)의 합성어로 통독 이전 서독 교회의 동독 내 반체제 인사 석방 사업이다.

Diakonie=봉사와 헌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아코니아'의 독일어식 명칭으로 독일교회협의회(EKD) 산하 사회구호복지기구다.

모규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