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가 허병섭 목사 소천 2주기… 추모 열기 뜨겁다
입력 2014-03-25 02:31
빈민운동가 허병섭(1941∼2012) 목사의 소천 2주기를 맞아 낮은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고 민중운동과 생태운동에 헌신한 그의 삶을 되새기는 추모열기가 뜨겁다. 1970년대 서울 청계천과 신설동 일대의 판자촌에서 사역한 허 목사는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에 등장하는 빈민운동가 공병두 목사의 실제 모델이다.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기빈협)와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은 26일 오전 11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추모예식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그가 세운 전북 무주의 푸른꿈고등학교에선 25일 오후 5시에 오용식 목사를 비롯해 허 목사와 함께 활동했던 목회자와 후배 등이 그의 생전 활동을 돌아보는 추모행사를 연다.
앞서 기빈협과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은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함춘회관에서 ‘허병섭의 민중교육 다시보기’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기빈협 총무 우성구 목사는 “지식인 관점이 아닌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 스스로 일어서도록 한 민중교육 차원에서 허 목사님을 이번 세미나에서 재조명했다”며 “내년에는 일용직 노동자 등과 함께 섬긴 동월교회를 중심으로 한 활동을 되돌아 볼 것”이라고 말했다.
허 목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4년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빈민운동에 뛰어들었고 2년 뒤 서울 하월곡동 달동네에 동월교회를 세웠다. 유신 시절 목요기도회 등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벌여 투옥되기도 했다. “경찰이 노동자에게는 거친 언행을 퍼부으면서도 목사에게는 존칭을 쓰며 대접하는 것이 죄스럽고 괴로웠다”며 88년 목사직을 스스로 벗었다. 이후 일용직 노동을 하며 목회자들과 함께 노동자협동조합 운동을 했다. 96년 생태교육 대안학교인 푸른꿈고등학교를 세웠고 민중교육이론서인 ‘스스로 말하게 하라’를 내기도 했다.
허 목사는 2009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아내 이정진씨를 돌보다가 자신도 의식을 잃는 등 건강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