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라, 즐겁고 슬프고 오싹한 ‘소리’ 가 넘친다

입력 2014-03-25 02:38


‘플라멩코&육자배기’ ‘연극&창극’ 독특한 작품 2편

대사 위주의 연극이 대부분인 연극판에서 ‘소리’로 오감을 자극하는 작품 두 편이 무대에 오른다.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62) 연출이 맡은 ‘피의 결혼’이 2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2012년 초연 당시 무수한 화제를 낳았던 한태숙(64) 연출의 창극 ‘장화홍련’은 다음달 1일부터 닷새 동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선보인다.

◇‘피의 결혼’, 스페인 플라멩코와 한국 육자배기의 결합=스페인의 음유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결혼식 날 신부가 유부남 레오나르도와 도망치자, 신랑은 이들을 추격한다. 신랑은 레오나르도를 죽이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신랑 신부는 이승헌과 김하영, 극 중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레오나르도 역은 윤정섭이 맡았다. 이들은 격정적인 사랑과 분노, 질투의 감정을 플라멩코의 격렬한 리듬으로 표현한다. 배우들이 80여 일 동안 플라멩코를 배웠다고 한다.

여기에 어머니 역을 맡은 김미숙이 아들의 죽음을 절절한 남도의 창으로 풀어내며 감성을 울린다. 그는 이윤택 연출과 함께 진도에 내려가 두 달 동안 소리를 배웠고, 이번 작품을 위해 직접 작창을 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한국의 육자배기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이 연출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집시 문화가 한반도의 척박한 남도 문화와 민중성, 변방성이라는 측면에서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극이 유명배우와 말(대사) 중심으로 가는 게 좀 못마땅했다”며 “연극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춤추고 노래하고 소리까지 어울리는 연희적인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국악 퓨전 음악그룹인 반(VANN)이 라이브 연주를 담당한다. 이들은 공연 20분전부터 무대에서 미니콘서트를 펼치며 연희적인 즐거움을 더할 예정이다. 국내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중남미 최대 연극 축제인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남미 콜롬비아로 날아가 현지에서 공연을 펼친다. ‘피의 결혼’은 450여 편의 참가작 중 ‘꼭 봐야할 공연 10’에 선정됐다.

◇‘장화홍련’, 판소리와 스릴러가 만났다=이 작품은 초연 당시 ‘새로운 창극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들었던 화제작이다. 원래 창극은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전통극 형식이지만 한태숙 연출이 배우들에게 연극 같은 대사와 연기를 주문하면서 연극과 창극의 경계를 묘하게 허물어뜨렸다.

창극 하면 흔히 해학적이거나 권선징악적인 주제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 창극은 무대의 시공간을 바꿈으로써 ‘소리의 힘’으로 얼마든지 공포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당시 “창극이라는 틀 안에서 공포, 격정 같은 감정을 음악적인 표현을 통해 잘 구축해보고 싶다”고 했던 한 연출은 음산한 구음과 서슬 퍼런 소리를 통해 한의 정서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고전 ‘장화홍련전’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줄거리는 이렇다. 공원과 호수가 있는 소문난 중산층 주택단지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그러던 중 새로 부임한 파출소장 정동호는 단순 가출로 보이는 배장화·홍련 자매 사건을 수사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아버지 배무룡과 달리 부인 허씨의 태도는 의심스럽고, 이 와중에 호수에서 울며 나오는 유령을 봤다는 소문이 퍼지며 동네는 더더욱 공포에 휩싸인다.

극작가 정복근과 한 연출은 이번에 대본을 다듬으면서 장화와 홍련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계모 허씨와 배다른 남동생 배장수 등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이웃 가정의 비극을 알면서도 못 본 척 하는 방관자들의 모습을 통해 불의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예정이다.

초연 당시 활약했던 국립창극단의 김미진(장화) 김차경(홍련) 외에 국립창극단의 떠오르는 신예 배우들로 더블 캐스팅을 선보인다. 정은혜(장화) 민은경(홍련)이 젊은 연기 파워를 보여준다. 계모 허씨 역할은 지난해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판관 미노스 역으로 존재감을 선보였던 김금미가 맡았다. 다정한 계모였으나 딸들의 결혼으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끔찍한 일도 마다않는 인간의 양면성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