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곳?… 인간공학적 예술 공간!

입력 2014-03-25 02:28


금호미술관 ‘키친(kitchen)-20세기 부엌과 디자인’ 展

부엌은 요리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시대를 반영하는 디자인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부엌은 사용하기에 편안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디자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6월 29일까지 열리는 ‘키친(kitchen)-20세기 부엌과 디자인’은 실용성 측면에서 현대 부엌의 디자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전시장에는 192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부엌 13점과 각종 주방용품 400여점이 진열됐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부엌의 효시가 된 것은 ‘프랑크푸르트 부엌’이다. 오스트리아 여성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1926년 디자인한 것으로 붙박이식 수납공간을 가진 일체형이다. 6.5㎡(2평)의 좁은 공간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효율적인 가사 노동이 가능하도록 가구를 배열했다.

1950년대 부엌은 인간공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독일 주방가구 ‘포겐폴’이 선보인 부엌들은 경쾌하고 희망적인 분위기와 함께 위생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부엌 가구들을 60㎝ 크기의 유닛(구성단위)으로 만들어 ‘ㄴ’자 또는 ‘ㄷ’자 등 주방마다 각기 자유롭게 배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전기보급과 주방도구의 기계화로 인해 가사 노동의 효율성이 극대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1960∼70년대는 인간공학에 과학적인 디자인이 보태져 사용자 중심의 공간으로 더욱 발전했다. 조리 순서와 동선의 최적화를 고려한 수납공간의 배열에 신경을 많이 썼다. 플라스틱이 마감재로 사용돼 부엌의 현대화가 가속됐다. 신소재인 폴리에틸렌을 이용해 개발한 ‘터퍼웨어’는 밀폐기능이 뛰어나고 깨질 위험이 없는데다 반투명 색상으로 주방용기의 혁명을 이끌었다.

1980∼90년대 들어 효율성과 위생성이 한층 강화된 부엌은 전문 요리사의 작업장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독일의 가구회사 불탑이 1998년 선보인 ‘시스템 20’은 가벼운 알루미늄을 사용해 이동이 쉽고, 분리와 조립이 가능한 디자인이다. 집안 환경에 따라 주방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도록 했다. 또 스테인리스를 사용해 깔끔하게 단장한 부엌은 마치 병원의 수술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실험적인 작업도 선보인다. 부엌과 거실을 분리한 벽면에 그릇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구멍을 낸 샤를로트 페리앙(프랑스), 냉장고와 전기버너, 찬장 등을 갖추고 있으면서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한 조에 콜롬보(이탈리아), 싱크대와 선반 등을 나뭇가지처럼 펼쳐 사용자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슈테판 베베르카(독일) 등의 최근 작업이 이색적이다.

금호미술관은 20세기 모던 디자인을 개척한 독일 바우하우스의 오리지널 오브제를 선보인 2008년 ‘유토피아: 이상에서 현실로’에 이어 2년마다 가구 디자인 전시를 개최했다. 올해 네 번째 전시로 출품작 대부분 금호미술관 소장품이다. 웬만한 작품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호가한다니 낡고 오래된 부엌 가구라고 해서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관람료 4000∼8000원(02-720-511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