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인 듯~ 바다인 듯 동·서·남해안 비경 한눈에… 경남 남해 바래길
입력 2014-03-25 02:33
남해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나비가 있다. 섬이지만 섬이 아닌, 바다지만 바다가 아닌 바로 경상남도 남해군이다. 한반도 끝자락에 내려앉을 듯한 나비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이 계절, 남해 구석구석 어디라 하더라도 봄빛이 찬란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남해까지 왕복 1000㎞가 채 못 되는 거리도 기꺼운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뭍이지만 이름이 바다인 이 재미난 섬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바래길을 걸어야 한다. 몽돌해변, 가천다랭이마을, 상주은모래해변, 남해편백자연휴양림, 나비생태공원, 독일인마을 등 남해의 주요 볼거리들을 모두 두르며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게끔 길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총 14개 코스지만 현재 10∼16㎞ 길이의 10개 코스가 완성돼 있다.
바래는 남해의 주민들이 물때에 맞춰 갯벌과 갯바위 등으로 나가 해초류와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남해 토속말이다. 남해 주민들이 바래를 위해 마을과 해안을 오가던 길들을 이어 놓았기에 걸음으로써 이곳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껴 볼 수 있다.
바래길을 관리하는 순수민간단체인 ‘남해바래길사람들’의 류영환 사무국장은 “바래길을 걷다보면 우리나라 바다 삼면을 다 볼 수 있다”면서 “대개 한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걸어야 하는 제주 올레길과 달리 해안선 굴곡이 복잡하고 만이 많아 바다가 좌우를 오가며 다양한 풍경을 빚어낸다”고 설명했다. 이곳 해안이 갯벌이 너른 서해, 리아스식 해안의 남해, 절벽이 깎아지른 동해의 특성을 모두 띄고 있기 때문이다.
1코스 다랭이지겟길과 3코스 구운몽길이 바래길의 백미로 꼽힌다.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마을과 남해의 비경을 압축해서 볼 수 있다. 평산항 마을 벽화에는 ‘남해 바래길에 오시다’란 환영인사가 담겨있다. 여수가 손에 닿을 듯 가까운 해안 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마늘밭은 푸르고 작달막한 매화는 흰 꽃을 터트렸고 노란 유채가 은근하게 달콤한 향기를 실어 보낸다.
1코스의 절정은 그 이름처럼 가천다랭이마을이다. 설흘산과 응봉산 자락이 바다로 급하게 떨어지는 비탈에 나이테가 빽빽하다. 한 줄 한 줄 그려 어느 세월에 산 턱밑까지 차올랐을까. 공식적으로는 108개로 셈을 갈무리하지만 그 숫자 안에는 농사지을 땅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층층이 계단식 논을 일궜던 남해 주민들의 세월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3코스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유명한 노도를 마주하는 벽련마을에서 천하몽돌해수욕장까지다. 남해 금산을 중심으로 남해 바다의 절경을 따라 뱅글뱅글 돌게 된다. 흙길을 걷고 싶다면 대량마을부터 일몰 전망대까지는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 호젓한 숲길이 좋다. 푸른 바다는 저 아래 내려앉았는데, 햇빛을 반짝이며 일렁이는데 눈이 아찔할 만큼 자극적이다. 그 모습에 홀려 발 디딤을 허술히 한다면 허공을 거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바래길을 걷는 내내 봄바람이 무심한 듯 뒷목을 스치고 길섶에 진달래가 방실방실 웃어 여행자의 가슴이 저 바다마냥 일렁였다. 오랜 세월 일궈낸 다랭이논이 이곳 남해 주민들의 것이라면 봄빛 일렁이는 남해 바다는 바래길을 걷는 여행자의 것이다.
글=김 난 기자, 사진=윤성중 기자 na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