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내 삶의 본문(本文)

입력 2014-03-25 02:31


몇 년 전, 시각장애인이란 역경을 딛고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던 고 강영우 박사와 ‘땅끝의 아이들’을 쓴 고 이민아 목사,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미국 존스홉킨즈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는 이승복 박사를 한 주에 연이어 만난 적이 있었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이들의 말 가운데 공통점이 있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탄식하던 때가 바로 ‘인생 대박’의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고 강 박사는 눈이 멀었을 때 자신은 쓰레기 같은 존재라는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고 술회했다.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됐다면 나는 평생 공장을 전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 이 땅을 떠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더 노력했고, 더 영원한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눈을 떴을 때엔 결코 보지 못할 고귀한 ‘삶의 본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 이 목사도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 이후에 내 ‘삶의 본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실패한 사랑보다, 치열했던 공부보다, 화려한 성취보다도 더한 삶의 본문이 있었습니다. 비탄의 강 속에 잠겼을 때에 비로소 그 삶의 본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실패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여덟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승복 박사는 금메달을 꿈꾸는 촉망받는 체조선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 장애를 입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재활을 한 끝에 유명 병원 전문의가 됐다. ‘슈퍼맨 닥터리’로 불리는 이 박사는 “기적은 당신 안에 있다”면서 어떤 고난도 결코 ‘인생의 본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3인은 인생의 무게에 힘겨워 거의 삶을 포기할 것 같은 순간을 이겨내며 다시 ‘삶의 본문’을 써내려갔다.

우리 삶의 본문에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각주(脚註·footnote)에 지나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 삶 자체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할 가장 비극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써내려가야 할 삶의 본문은 따로 있다. 그 본문 속에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위해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참 정체성을 발견한다면 인생의 각주와 같은 그림자 속에서 세월을 보낼 수 없다.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순간 그림자는 사라지고 실재가 찾아온다.

우리는 누구인가.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우리 정체성을 말한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자 같으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시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처벌을 받은 자 같으나 처형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는 자 같으나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이를 부요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갖은 환난을 다 겪어도 곤경에 빠지지 않고, 가망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

풍요 속에서도 인생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감정적·영적 측면에서 허물어지기 직전인 사람들, 과거의 문제로 봄날 가로수에 기대 속울음을 참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아픔을 결코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너의 미래는 바로 나다!”라고 말하시는 그분과 함께 새롭고 산 ‘삶의 본문’을 써내려가시길 기원해 본다.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