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도소 노역 일당이 5억원이라니

입력 2014-03-25 01:41

전직 대기업 총수가 수백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고 짧은 기간에 노역으로 때우고 있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광주지검은 재판 도중 해외로 달아났다가 귀국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을 인천공항에서 붙잡아 광주교도소 노역장(勞役場)에 유치했다고 23일 밝혔다.

현재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허 전 회장에게 비난이 쇄도하는 것은 그의 일당이 5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광주고법 형사1부가 2010년 1월 수백억원의 탈세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허 전 회장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하루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허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 때 하루 구금된 적이 있어 남은 벌금 249억원만 몸으로 때우면 된다. 노역장에서 49일가량만 빈둥거리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아무 탈이 없게 된 것이다.

서민의 노역 일당이 통상 5만원인 데 비해 허 전 회장은 1만배나 많은 일당을 받고 있다. 교도소에서 잡일이나 하면서 노역 일당이 5억원이나 된다니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노역 일당의 경우 벌금 2340억원인 ‘선박왕’ 권혁 회장의 3억원, 벌금 1100억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억1000만원과 비교해도 허 전 회장은 이만저만한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다.

국민을 실망시키고 격노케 하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범죄로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고 일당 5만원으로 계산해 50일이나 노역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과 탈세·횡령 혐의로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고도 일당 5억원으로 환산해 50일가량만 견디면 되는 재벌을 보고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아니라 사실상의 유전무노(有錢無勞) 무전유노(無錢有勞)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참에 형법을 뜯어고쳐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하는 기간을 1일 이상 3년 이하에서 최소한 10년 이하로 늘려야 한다. 또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는 형법 개정안처럼 노역 일당은 벌금 최소액(5만원)의 10배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그래야 돈 있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항소심 판결 직후 허 전 회장이 해외로 출국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누가 무슨 의도로 해외 도피를 방조했는지 조사해 엄벌해야 한다. 상식에 맞지 않게 허 전 회장에게 노역 일당 5억원을 선고한 재판부는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검찰 국세청 지방자치단체 등은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 추적에 심혈을 쏟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