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기호] 도 넘은 일본의 혐한 감정

입력 2014-03-25 02:27


지난 8일, J리그에서 열기가 뜨거운 우라와 레즈 서포터가 우익 상징인 욱일승천기와 ‘Japanese Only’ 현수막을 내걸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다. 일본 내 왜곡된 인종차별을 드러낸 씁쓸한 단면이었다. 우경화가 심해지면서 노골적으로 번지는 외국인 혐오가 축구경기장까지 점령한 셈이다.

혐한 시위는 갈수록 늘어나고 행태도 격렬해져 최근 3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 도쿄 서점에 가면 혐한론, 반한론 책들이 대부분이다. 전 주한특파원이 근거 없는 왜곡과 궤변으로 한국을 비난한 ‘악한론(惡韓論)’은 작년 4월 출판된 이래 10만부나 팔렸다. 2005년 이후 90만부 팔린 ‘만화 혐한론’은 재출간을 앞두고 있다. 일본잡지 제목들도 선정적이다. 가련한 나라 한국, 세계 최고의 차별왕국, 성범죄가 만연한 나라 등 악의에 가득 찬 표현들이 즐비하다. 4월 프로그램 개편을 맞아서 일본 5대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한류드라마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우익정치가들은 일본군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 일본 방위청 도서관에서 발견된 군부 직접 개입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들이대도 망언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극우정치가 다모가미 후보는 2030세대 지지도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다. 혐한류의 자양분을 먹은 젊은 우익세대가 지방선거에 나선 것이다.

인종차별과 반한정서는 2005년 만화혐한론, 2006년 재특회 설립 이후 본격화됐다. 겨울연가와 한류 붐에 대한 선망과 질투, 한국기업의 글로벌 약진 등에 대한 경쟁심이 중첩되면서 비뚤어진 집단심리의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잘못된 미디어 내셔널리즘은 반중·반한 감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당연히 일본 내 인종혐오 현상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 인종차별적인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를 비판했다. 일본은 아직 다문화사회가 아니다. 뚜렷한 외국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스스로를 이민국가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일본 내 외국인 인구는 203만명이다. 총인구 대비 1.6%로, 한국 3.1%에 비해 낮다. 오랜 단일민족의 신화, 아시아인에 대한 뿌리 깊은 우월의식, 제대로 된 역사교육의 부재,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법률 부재는 언제든지 극단적인 우익이나 인종주의자들이 설치고 다닐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심각한 인종차별 현상을 방지하려면 일본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법적 규제를 해야 한다. 196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인종차별 철폐조약은 인종우월이나 증오사상을 유포, 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자에게 최고 7년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독일과 캐나다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형사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일본은 기껏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다루고 있다. 보다 못한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작년 9월 ‘헤이트 스피치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아베정권 등장 이후 더욱 노골화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무라야마 담화 흔들기,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과 영토분쟁 등 아베정권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 한 인종차별과 헤이트 스피치가 사라질 리 만무하다.

2차 세계대전 시 침탈한 엄청난 영토를 프랑스와 폴란드에 반납해 신뢰를 얻은 아데나워 총리, 비 오는 날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총리. 전후 독일이 유럽 품에 다시 안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위대한 정치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베정권도 침략과 식민통치의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영토야욕을 포기하고 전후 보상을 시작하는 것만이 일본이 동북아와 세계무대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