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물발자국
입력 2014-03-25 02:34
지난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었다. 우리나라가 물 사정이 비교적 좋지 않은데도 물 낭비가 심하다는 것쯤은 모두가 다 아는지라 개인 차원에서는 목욕 대신 샤워하고 샤워기 잠근 채 씻고…. 문제는 이렇게 보이는 물만 절약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그리고 특히 지구 전체가 물 부족 사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식품을 중심으로 한 소비재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 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물, 즉 ‘가상수(virtual water)’의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이 가상수를 포함해 어떤 상품의 생산·유통·소비·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들어가는 물 사용량을 ‘물발자국’이라고 한다. ‘물발자국 네트워크’ 공동 창립자인 네덜란드 트벤터 대학의 아르옌 훅스트라 교수가 2002년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예컨대 커피 1ℓ의 물발자국은 커피를 재배·가공하고 소비한 뒤 그 과정에서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데까지 들어가는 일련의 물을 포함한다.
물발자국 네트워크에 따르면 2005년까지 10년간 전 세계 물발자국 가운데 농산물의 비중이 92%로 절대적이다. 농산물과 가공품 가운데서도 단위당 물발자국이 가장 높은 것은 역시나 초콜릿 커피 쇠고기 등 선진국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들이다. 초콜릿의 물발자국 값은 ㎏당 1만7196ℓ로 모든 식품 중 가장 높다. 농축산물 중에서는 쇠고기가 1만5415ℓ로 가장 높다. 이어 양고기(1만412ℓ) 돼지고기(5988ℓ) 닭고기(4325ℓ) 쌀(2497ℓ) 옥수수(1222ℓ) 사과(822ℓ) 감자(287ℓ) 순이다. 음료 가운데는 커피가 ℓ당 1056ℓ로 가장 높고, 와인(872ℓ) 맥주(296ℓ) 순이다.
한국의 연간 1인당 물발자국은 1629㎥로 인구 500만명 이상 102개국 가운데 상위 40번째 국가다. 세계 평균(1385㎥)을 훨씬 넘는다. 또 우리나라는 세계 6위 물 수입대국으로 물발자국 전체의 78%는 곡물, 육류 등에 함유된 가상수다. 네트워크의 ‘국가 물발자국 계정(2011)’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멕시코, 유럽, 일본과 함께 대표적인 가상수 순수입국이다.
우리가 50g짜리 초콜릿 하나를 사먹을 때마다 가정용 욕조 3개 분량의 물 860ℓ의 물이 사라진다. 빈곤한 나라들에서 수백명에게 절실한 마실 물이 될 수도 있을 양이다. 모든 게 연결돼 있는 환경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때로는 말과 행동 사이에 이중적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좋아하는 기호식품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 느끼는 당혹감을 어쩔 것인가.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