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청와대 내 야당이 있어야 한다

입력 2014-03-25 02:34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초등학생들이 하는 받아쓰기 말고 토론을 시켜라”

필자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손녀 둘이 있다. 놈들이 크면 아무래도 한자리씩 할 것 같다.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언니가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에게 받아쓰기를 시킨단다. TV 뉴스를 볼 때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는 으레 대통령이 지시하고 모든 장관들이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는 모습이다. ‘건성건성’ 받아썼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듯 긴장된 표정으로. 예닐곱 살에, 장관들이 하는 받아쓰기를 열심히 한다니 기대해도 좋을듯하다. 웃자고 해본 소리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각부 장관들인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며 정부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행정부 최고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회의라면 진지하고도 열띤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깊은 속은 다 모르겠으되 TV에 비친 국무회의의 모습은 토론장이라기보다는 받아쓰기 시험장 같다.

지난 20일 TV로 7시간 넘게 생중계된 규제개혁점검회의를 끝까지 지켜봤다. 필자의 최장 시간 TV 시청 기록이지 싶다. 회의 내용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서였다. 시청 소감은 기대 이상 합격점이었다. 대통령의 규제 개혁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보다는 대통령 주재 회의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받아쓰기만 하는 게 아니고 토론도 있는 모임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진작 그랬으면 불통 대통령이라는 비판도 많이 줄었을 것을.

TV에서 장관들이 받아쓰기하는 모습은 그만 봤으면 한다. 장관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져 결론을 못 내렸다는 기사도 가끔은 있었으면 싶다. 국무회의가 요식행위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으면 한다.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받아쓰기 대신 토론을 하고, 필요하면 나중에 속기록을 보라고 지시하면 어떨까.

한걸음 나아가 박 대통령에게 더 바라는 게 있다. 결혼 안 한 여성 대통령에게 적절치 않은 비유이겠으나 ‘정치적 시어머니’가 있었으면 한다. 들리는 바로는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측근이 없다고 한다. 언젠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세간의 소문과 달리 자신도 쓴소리를 많이 듣는다는 해명을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왕세자 책봉에 반대했던 황희를 중용한 성군 세종대왕은 국가대사를 결정할 때면 수십 차례씩, 요새말로 끝장토론을 거쳤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 다른 대신들로 하여금 더 많이 의견을 개진케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에 매양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는 허조(許稠)를 고집불통이라며 불편해 하면서도 곁에 두었다. 그의 반대 의견을 모두 수용하진 않더라도 그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참고하여 정책을 보완할 수 있었다. 악역을 맡겨 사안의 문제점들을 들춰냄으로써 완벽을 기하려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개념을 일찍부터 터득한 것 같다.

우리에겐 안시성 싸움의 패장으로 기억되지만, 중국에서는 최고의 통치자로 꼽히는 당 태종 이세민 역시 쓴소리쟁이 위징(魏徵)이 곁에 있었다. 태종은 황태자였던 형 이건성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 이건성의 측근이었던 위징은 이건성에게 동생 이세민을 제거하라고 건의했다. 위징은 나중에 태종 앞에서도 이건성이 자기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태종은 그런 위징이 때론 죽이고 싶도록 밉기도 했으나 옆에 두면서, 그에게 “야단맞을까봐” 계획한 국가 제사를 취소하고 헌상 받은 매를 숨기다가 죽였다는 등 숱한 일화들이 전해진다.

박 대통령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 내 야당이었다고 했다. 지금 청와대 내에 야당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에게도 무서운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게 1차적으론 하나님과 국민이어야겠지만 측근 중에 무서운 시어머니가 있는 게 바람직하다. 직장 상사에게도 직언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하물며 장관이나 참모들이 자신의 임면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대통령 자신이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백화종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