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폴리 현숙 (14) 신앙으로 변한 아이들 우리 사역 최대 후원자로
입력 2014-03-25 02:13
나는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외국인과 결혼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의 애를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다 깨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 폴리 목사와의 재혼으로 4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남편은 8살 마가렛과 6살 트레버, 나는 9살 다니엘와 8살 크리스틴을 데리고 가정을 이뤘다. 남편의 딸 마가렛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내가 만든 음식을 토해 버리고, 그릇을 다 태우곤 거짓말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주려 하면 울어버리고, 예쁜 옷을 사주어도 탐탁지 않아 했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휴스턴으로 가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의 경우 그 지역을 떠나면 양육권을 전처에게 빼앗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법정에서 싸워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에겐 시험이었지만 하나님을 택했다. 당연히 어려움이 닥쳤다. 매달 전처에게 300만원의 양육비와 위자료를 주어야 하는 재정과 돈 계산도 않고 콜링에 질주하는 남편 때문에 더 힘들었다. 나는 치아의 통증이 심해도 2년간 치과를 가지 못했고, 아이들이 구멍 난 양말을 보여주어도 새것으로 사주지 못했으며, 아이들은 흑인과 멕시칸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를 다녀야 했다. 나는 애들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훈련을 하게 됐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델은 되었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잘 양육하지 못했었다. 가정에서 양육하지 않고 교회에 아이들을 맡기면 될 줄 알았다. 폴리 목사는 항상 세미나와 설교를 하러 미국 전역을 다니니 집을 항상 비웠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만 잘 가면 될 줄 알았다. 그 결과 자녀들은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났고, 신앙으로 제대로 양육되지 않은 아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사역하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 3:5)
6년 전, 남편의 아이들이 우리와 다시 함께 살게 됐다. 마가렛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했으며, 트레버는 캘리포니아에서 매일 텔레비전만 보면서 학교도 가지 않고 학교 성적은 바닥을 쳤다. 아이들을 잘 양육하지 못한 죄책감이 많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선교한다고 하면서 내 아이들을 양육하지 못하면 선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의 가정예배로 매주 한 개의 성경 이야기와 찬양을 외우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후에 ‘말씀을 행하는 자’ 양육 프로그램이 탄생됐다. 1년 후, 아이들은 놀라운 영적 성장을 했다. 우리가 집을 비워도 가정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고, 햄버거 가게에서도 멕시칸 동료들을 전도하고 양육한다. 우리가 없어도 집안을 잘 돌본다. 자신이 번 돈으로 단체에 헌금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고, 선교여행도 함께 간다.
지난번 우간다 선교여행에서 이 양육은 큰 빛을 발했다. 공항에 내리니 어둠이 가득하고 시커먼 사람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게 됐다. 왠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가정예배 때에 불렀던 찬양을 내가 시작했다.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하면 겁없네.” 모든 가족원이 따라했다. 그 순간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북한 선교를 위해 한국으로 온 외국인 선교여행팀으로 한국에도 왔었다. 탈북민들의 집에 통역자와 함께 가서 ‘홈스테이’도 했다. 트레버가 갔던 집의 탈북민이 와서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키웠어요? 난 북한사람인데도 북한사람들이 굶는다는 것을 잊고 사는데….” 트레버가 엄청나게 많은 양의 국수를 국물까지 깨끗이 먹었다고 한다. 남겨도 괜찮다고 했는데, 트레버는 “엄마가 지금도 북한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책임져 주셨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