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클렌징 오일·거품목욕은 사치

입력 2014-03-24 02:20


김유나 기자의 물 절약 체험기

화장을 지우려고 ‘클렌징 오일’ 대신 ‘클렌징 티슈’를 빼들었다.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을 맞아 시도한 ‘물 절약’ 체험이 두 시간 만에 난관을 만났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광고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평소에는 클렌징 오일을 사용해 1차로 화장을 지운 뒤 거품이 나는 제품으로 다시 얼굴을 닦았다. 물론 깨끗한 물로 헹구는 3차 작업은 필수다. 그런데 클렌징 티슈로만 하려니 피부에 닿는 자극이 너무 생경하다. 제대로 화장이 지워질지 걱정됐다.

21일 밤 10시부터 23일 오전 10시까지 36시간 동안 유엔개발계획(UNDP)이 권장하는 적정 물 사용량에 맞춰 살아보기로 했다. UNDP는 씻고 마시고 청소하는 모든 것을 합해 하루 20ℓ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물 30ℓ로 36시간 생활하기’에 도전했다. 눈금 있는 물병이 없어 집에서는 1.7ℓ 커피포트에 물을 담아 쟀다.

목욕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봄을 맞아 거품목욕을 해보자며 샀던 ‘입욕제’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커피포트에 1.7ℓ 물을 받아 살짝살짝 끼얹으며 씻었다. 양치에는 700㎖를 컵에 따라 썼다. 이렇게 컵을 사용하면 수도꼭지를 틀고 양치할 때보다 하루 평균 5ℓ가 절약된다고 한다. 21일 밤 10시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목욕과 세수 등에 사용한 물은 9.4ℓ였다.

22일 아침. ‘화장 지우기’만큼 험난한 관문이 또 있었다. 머리 감기. 평소 샴푸 린스 헤어팩을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샴푸만 쓰기로 했다. 한 번 머리를 감는 데 5.4ℓ를 썼다. 구석구석 헹궈지지 않아 찝찝했다. 양치와 세수에 또 1ℓ를 사용했다.

대신 저녁에 할 샤워 준비를 철저히 했다. 미끈미끈한 바디크림을 바르지 않았다. 화장도 기름 성분이 든 제품은 뺐다. 씻을 때 물이 많이 필요치 않게 미리 조치하니 이날 저녁 샤워는 전날의 절반 수준인 5ℓ로 가능했다.

23일 오전에도 샴푸만 사용해 머리를 감았고 가벼운 세안과 양치로 마무리했다. 36시간 동안 사용한 총량은 26.2ℓ. 적정량보다 3.8ℓ를 덜 썼다. 그러나 UNDP 권고량은 변기를 내리거나 마시는 물의 양도 모두 포함된 것이다. 36시간 동안 차와 음료 등을 일절 구매하지 않았지만 마시는 물의 양까지 체크하진 못했다.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변기에 절수 키트만 달아도 하루 평균 8ℓ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음악을 들으며 목욕한 뒤 시원한 정수기 물 한 잔 마시는 것. 이 작은 행복이 누군가에겐 사치다. 유엔이 2012년 발표한 질병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세계 170만명이 수질오염과 비위생적 환경에 목숨을 잃고 있다. 욕조에 물을 담아 목욕하려면 300ℓ가 든다. 욕조 목욕만으로도 UNDP 권고량의 15배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김유나 기자 yunases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