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나룻이 멋진 배우였다. 분명한 얼굴선, 자세도 발랐다.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 ‘난타’의 최고참 출연배우 설호열(43) 얘기다. 그를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난타전용극장에서 만났다. 이날 오후 5시와 8시 두 차례 무대에 선 그는 14년째 ‘난타(亂打)’ 중이다.
“뉴욕 브로드웨이, 도쿄와 오사카, 방콕, 심지어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트리폴리 등 세계 50~60개 도시에서 공연을 했어요. 두드리는 소리와 행동이 중심인 넌버벌 뮤지컬이니 세계인들이 빠져들었죠. ‘난타’는 제 청춘이며 삶이죠. 배역은 주방에서 일하는 ‘섹시가이’입니다.”
그는 1999년 늦여름 부산을 떠나 서울 무대로 진출했다. 지금은 대배우가 된 선배 김윤석이 불러서였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촌놈’처럼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당시 윤석이형이 힙합 뮤지컬 ‘백댄서’를 했어요. 서울 대학로 인켈아트홀이었죠. 두 달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출연 작품을 찾았죠. 오디션을 15번 봤어요. 지방 극단서 올라온 사람이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듬해 1월 그는 ‘난타’ 오디션에 참가해 당당히 통과했다. 97년 시작된 ‘난타’는 초연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배우에겐 선망의 무대가 됐다. 그는 오디션 장소에 오전 9시에 갔다. 300명이 몰렸다. 오후 늦게야 송승환 대표(현 PMC프로덕션 회장) 등 심사위원 앞에 설 수 있었다.
“저 친구 섹시가이가 딱이야.” 설호열에게 송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섹시가이가 14년이 된 것이다. 그때 섹시가이 선배는 영화배우 류승룡이었다.
“제일 행복했던 게 회사가 삼시 세끼 밥을 주는 거였어요. 연극판은 가난해 그런 경우가 정말 드물었죠. 딱히 잘 데도 없어 친구 집을 전전하며 ‘메뚜기’하던 시절이라 연습실에 가면 그리 행복할 수 없었어요. 밥 주죠, 연습실에서 자도 되죠. 하하.”
‘섹시가이’의 주 소품은 닭집에서 쓰는 큰 칼과 프라이팬. 그러다 보니 베이기도 하고, 거친 액션에 뼈가 부러지는 사고도 난다.
“사고도 있지만 손목 및 어깨 디스크 등이 많아요. 아프긴 하지만 배우로서 영광이죠.”
그는 14년차 ‘늙은’ 배우다. 서울에 올라와 찜질방, PC방 등을 전전하며 배우생활 하다 ‘난타’를 만난 후 결혼, 서울서 전세살이를 했다. 지금은 번듯한 아파트에 아홉 살 딸을 둔 가장이다. 그는 “관객에겐 단 한 번 보는 섹시가이다. 고로 나는 관객이 있어 존재하는 배우다”라며 천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두드림을 할 수 있을까? “송 회장이 그러시더라고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라고요.” 매일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 배우에게 주어진 선물인 셈이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베이고 부러져도… 내겐 영광의 상처” 15년째 ‘난타’ 공연 설호열
입력 2014-03-24 03:01 수정 2014-03-24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