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연중기획 착한교회] (6) 창원 임마누엘교회

입력 2014-03-24 02:29 수정 2014-03-24 10:57


교회 예산 60% 지역사회·선교에 사용

“목사님예, 교회에서 우리한테 장학금을 와(왜) 주는데예. 교회 나와서 예수 믿으라고 주는 거먼 지는 못 받겠쓰예. 지는 불교거든예.”

경남 창원 명서로의 임마누엘교회에 찾아온 30명의 장학생 중 한 명이 말했다. 학생들을 인솔해 온 교사가 당황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임마누엘교회는 매년 창원 명서동 일대 고등학생 30명에게 1년간 학비 전액을 지원해 왔다. 당돌한 학생의 발언에 이 교회 담임 이종승 목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놈들아. 내가 1948년생이다. 세살 때 6·25전쟁이 터졌고, 전쟁으로 모든 것이 다 부서진 시절에 자랐다. 그때 우리는 다 가진 것이 없었다.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이 창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격차가 너무 커졌다. 학교에서도 어떤 아이들은 방학마다 해외여행 다니는데, 너희들은 등록금도 못 낸다는 얘기에 우리 교회 사람들이 다 마음이 아팠다. 혹시나 너희들이 낳아주신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지, 세상을 원망하고 가진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을지. 그런데 말이다, 이 목사가 살아보니까 세상은 살만 하더라. 살아보니까 좋은 사람도 많더라. 너희들에게도 그런 것을 알게 해 주려고 우리가 이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돈이 많아서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매달 5000원, 1만원씩 모은 돈이다. 이 돈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다만 이 돈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다. 갚아라. 이 다음에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 너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희도 사랑을 나누어 주고,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라. 그게 갚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부드럽게 얘기하는 이 목사의 말에 몇몇 학생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몇 달 뒤 학생들은 교회에 편지를 보내왔다.

“목사님, 그리고 임마누엘교회 성도님. 제가 이번 시험에 2등을 했습니다. 다음엔 1등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1일 교회 당회실에서 기자를 만난 이 목사는 몇 해 전 겪은 이 얘기를 들려주며 “그나마도 옛날 이야기”라고 했다. 이제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에게서 편지를 받아본지도 오래됐다는 것이다. 그는 “속상해도 해야지. 베풀고 나눠주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데”라고 말했다.

임마누엘교회는 교회 예산의 60%를 지역사회와 해외선교, 교회 개척 등 교회 바깥을 위해 쓴다. 교회가 섬김의 사역을 하려고 맘을 먹자 할 일은 너무 많았다. 농어촌 지역의 미자립교회를 돕는 일, 장애인 지원, 해외 선교와 노방 전도도 교회 몫이었다. 말 그대로 퍼주기다. 보답은커녕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못할 때가 많지만 20여년간 지치지 않고 이런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마련해주고 차상위계층 가정을 돕는 일도 꾸준히 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경남 지역의 이웃을 돌보고 있다. 이 목사는 기아대책 경남본부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임마누엘교회가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경남의 복음화 역사를 찾아내 되살려낸 일이다. 인천과 평양을 통해 전해진 복음과 미국 영국의 선교사들만이 부각되던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같은 시대 경남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호주의 선교사들을 찾아냈다.

일제강점기 평양과 서울의 교회들은 신사참배 강요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이 지역 교회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임마누엘교회는 호주까지 찾아가 선교사들의 후손을 만나 숨겨진 역사를 밝혀내고 유물을 수집했다. 경남 지역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와 정부, 언론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와 경남기독교총연합회가 힘을 모아 창원에 경남선교120주년 기념관을 세우고 호주선교사 묘원을 조성했다. 이밖에 손양원 목사 생가 복원과 성시화대회 등 지역 교계 현안에도 임마누엘교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섬김은 나눔으로, 나눔은 부흥으로 이어졌다. 임마누엘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가운데서도 계속 성장했고, 경남 지역의 복음화율도 20여년 전 4%였던 것이 지금은 9%까지 높아졌다.

창원=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