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당 ‘통큰정치’로 원자력방호법 풀어라
입력 2014-03-24 02:21
허송하다 기회 놓친 정부·여당 책임 작지 않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23일 출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은 어두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한민국 국격이 실추되는 것은 물론 자신 또한 국제사회에서 ‘믿지 못할 지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아직 ‘원자력 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원자력방호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제2차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와 한 ‘핵 테러 억제 및 핵물질 방호 협약 비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박 대통령은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개회식 연설에서 2012 서울회의 이후 한국의 성과로 원자력방호법 개정안 통과를 중요 사례로 들 예정이었다고 한다. 헌데 그걸 못하게 됐으니 나라 위신과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그 1차적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 원자력방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건 2012년 8월이다. 사실상 법안을 1년6개월 넘게 방치해 오다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가 임박해서 서둘러 처리를 시도하다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여당 주장대로 국격과 직결된 중요 법안이라면 벌써 처리했어야 마땅했다. 여야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내용도 없어 정부·여당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법안은 진작 통과됐을 것이다. 정부·여당의 소통 부재, 전략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놓고 모든 걸 야당 탓으로 전가하는 건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원자력방호법과 이와 아무런 관련 없는 방송법을 연계 처리하자는 야당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라 위신이 깎이건 말건 정부·여당의 급박한 사정을 자신들의 일방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단과 도구로 삼는 건 비겁하다. 원자력방호법은 야당도 이미 다 동의한 내용이다. 이 법이 2011년 국회가 비준동의안으로 처리한 핵 테러 억제 협약과 핵물질 방호 협약에 대한 후속조치로 추진된 사실을 누구보다 민주당이 잘 알고 있다.
개정안은 인명 살상이나 재산·환경을 파괴하기 위해 방사성 물질·장치를 제조·소유·사용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범죄인 인도나 수사 시 국제사회가 공조하자는 내용의 지극히 당연한 규범을 담고 있다. 북의 핵 장난으로 끊임없이 안보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와 관련된 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들 어느 나라가 공감하겠는가.
민주당은 연계를 풀어야 한다. 반대 법안도 아니고 국격과 관련된 문제를 국내 문제와 연계하는 건 국정 발목잡기, 몽니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더욱이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이 추구하는 새정치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국익에 관한 문제다. 대통령 체면이 상하면 야당에도 좋은 게 아니다”는 민주당 이종걸 의원 말이 정답이다. 국민들은 국익을 저버린 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